[@뉴스룸/장택동]증인을 위한 국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장택동 정치부 차장
장택동 정치부 차장
“국정감사를 하기 위해 증인을 부르는 게 아니라 증인을 부르기 위해 국정감사를 하는 것 같다.”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국정감사를 지켜본 한 정치권 인사의 촌평이다. 각 상임위원회마다 일반 증인 채택 문제로 여야가 ‘전쟁’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환경노동위원회에선 여야가 일반 증인 채택 문제로 다투다가 만 하루 반을 허송세월했고, 정무위원회는 국감장에서 의원들이 서로를 인신공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2조에는 “…국정감사나 국정조사와 관련하여…증인·참고인으로서의 출석이나 감정의 요구를 받은 때에는…누구든지 이에 응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출석을 강제하기 위해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한 경우는 동행명령을 내릴 수 있고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또 국정감사는 한국에서만 채택하고 있는 독특한 제도다.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등 저명한 헌법학자들이 참여해 8월 공개한 국회 헌법개정자문위원회의 헌법개정안도 “세계에 유례가 없는 국회의 국정감사권을 폐지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그만큼 대한민국 국회의 권한은 막강하다. 권한이 막강할수록 꼭 필요한 범위로 한정해 행사하는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일반인을 증인으로 불러서 국정의 문제점을 시원하게 밝힐 수 있다면 억지로 제한할 일은 아니다. 대기업 총수라고 해도 무조건 예외일 수는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번 국감에서 일반 증인을 통해 놀랄 만한 사실이 새로 드러났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의원들은 어렵게 부른 일반 증인들에게 말할 기회조차 거의 주지 않는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실에 따르면 18대 국회에서 국감에 채택된 일반 증인 가운데 12.3%는 아예 아무 질문도 받지 못한 채 돌아갔고 17.2%는 답변시간이 채 1분이 안 됐다. 평균 답변시간은 3분 54초에 불과했다.

사실 국감을 지켜보다 보면 기관 증인도 ‘이렇게 많이 불러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국감 대상 기관의 고위 간부들은 대부분 기관 증인으로 채택돼 하루 종일 국감장에 앉아 있다. 하지만 답변은 기관장이 거의 대부분 하기 때문에 다른 공무원들은 말 한마디도 못하고 돌아가기 일쑤다. 그러는 사이에 각 기관은 국감 당일에 업무가 마비되다시피 하고 공무원에게 녹봉으로 지급되는 국민의 혈세는 낭비되고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회의원 본인이 어느 날 국감장에 증인으로 서게 되고, 아무 질문도 못 받고 돌아가는 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무분별한 증인 채택은 국감 무용론을 부추길 뿐이다. 증인을 부르는 것은 가급적 자제하되 채택된 증인에 대해서는 집요한 질문을 통해 국정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노력이 절실하다.

장택동 정치부 차장 will71@donga.com
#국정감사#증인#국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