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전문기자의 그림엽서]무라카미市의 겨울풍정 ‘사카비타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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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니가타 현 무라카미 시의 마치야 거리에서 한겨울 연어를 처마에 걸어 말리는 모습.
일본 니가타 현 무라카미 시의 마치야 거리에서 한겨울 연어를 처마에 걸어 말리는 모습.
5년 전 시게이에 도시노리 당시 주한 일본대사가 한 방송사의 음식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주한 일본대사관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대사관 만찬을 이끌어가는 일본인 조리장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유는 분명했다. “정통 일본 요리를 정성스럽게 대접하는 것만큼 부드럽고 강한 힘을 발휘하는 외교술도 없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그 기억은 또다시 그 음식을 갈구하게 만든다. 레몬은 보기만 해도 입 안에 침이 고이고 불고기는 냄새만 맡아도 허기가 진다. 여행도 같다. 에펠탑을 보러 파리에 갔지만 다시 파리를 찾게 만든 것은 한 레스토랑의 음식과 와인이다. 그만큼 여행에서 음식은 그 자체로 핵심 가치다.

그간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많은 체험을 했다. 그렇지만 음식만큼 그곳 인상을 강렬하게 심어준 것은 없었다. 북극권의 동토에 있는 핀란드 라플란드의 레인디어(순록) 스테이크, 그리스 산토리니 섬의 지로스(케밥 종류), 알제리 사하라 사막의 아드라르에서 맛본 어린 양 구이와 쿠스쿠스, 이탈리아 아말피 해안의 레몬첼로(레몬껍질 술), 상하이 골목길에서 사 먹은 우리 돈 500원짜리 빵(다양한 내용물의 즉석 전병)…. 지금도 거길 생각하면 당시 맛본 그 음식부터 떠오른다. 동시에 입맛을 다시며 다시 찾고픈 충동을 느낀다.

이 그림엽서의 무대도 그런 곳 중 하나. 일본서도 연어 요리로 명성이 자자한 니가타 현 무라카미(村上) 시다. 위치는 동해를 사이에 두고 강원도와 마주한 곳. 이즈음 시월이면 무라카미는 연어잡이로 부산하다. 이곳 미오모테 강에서 부화해 북태평양으로 나갔다가 산란과 수정을 위해 돌아오는 연어다. 연어 귀향지는 일본 전국에 허다하다. 그래도 이곳만큼 특별한 곳은 없다. 세계 최초로 연어의 인공양식에 성공한 곳이어서다.

그게 예서 연어요리가 발달한 배경이다. 이곳에선 ‘연어 한 마리로 백 가지 요리를 낸다’는 말이 자연스럽다. 물론 과장이다. 가보니 머리, 볼, 심장 부위까지 열다섯 가지를 낸다. 그런 무라카미에서 아주 인상적인 연어요리와 만났다. 일본 술 사케의 최고 안주로 이름난 ‘사카비타시’다. 염장 건조한 연어 살을 칼로 얇게 저며 내는데 핵심은 먹기 전에 사케를 살짝 흩뿌려 녹녹하게 만드는 것이다. 엽서 사진에서 보이는 게 사카비타시를 만들려고 건조 중인 연어들이다.

사카비타시는 5kg 이상의 큰 놈만 쓴다. 내장을 꺼내고 염장한 뒤 저렇듯 겨우내 처마 밑에 매달아 둔다. 그러면 황태처럼 꾸덕꾸덕해지며 맛이 드는데 한겨울 대륙에서 불어오는 북서풍이 요체다. 59년째 사카비타시를 만들어 온 연어장인 깃카와 뎃쇼 씨(79)는 집집의 처마에 걸린 수많은 연어를 보면서, 짭조름한 감칠맛의 사카비타시를 안주 삼아 무라카미 지자케(地酒·지역의 술)를 음미하는 것이야말로 무라카미 여행의 진수라고 강조한다. 사카비타시는 무라카미를 중심으로 반경 15km 이내 지역에서만 생산된다.

뭔가 하나를 붙들면 통달할 때까지 끝장을 보는 게 일본인의 성정이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던 약육강식 문화가 가져온 봉건시대의 산물일 수도 있고 중국 대륙의 문물이 자유롭게 전파되지 못했던 섬이란 단절 상황에서 어렵사리 일궈낸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산물일 수도 있다.

그런데 무라카미에선 연어조차도 그 대상이 되었다. 연어는 강으로 헤엄쳐 오르기 직전에 머무는 기수(汽水·바닷물과 민물이 섞여 염분이 적은 강어귀)에서 잡아야 가장 맛있다는 걸 그들은 안다.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지느러미에서는 열심히 앞만 보고 노력하는 삶의 교훈을 챙기기도 한다.

무라카미가 내게 묻는다. 한국에선 어떤 음식이 저렇듯 짙은 한국의 풍정을 외래 방문객에게 심어주고 있는지. 김치, 불고기, 비빔밥…. 물론 많이 있다. 하지만 이건 ‘전국구’라 어디서나 맛볼 수 있다. 지역의 풍정을 선사하기엔 미흡하다. 찾아보면 없지도 않건만 그렇다고 딱히 이거다 내세울 것도 없으니 막막하고 답답하다. 일본엔 저런 ‘무라카미’가 전국에 수백 수천을 헤아리는데…. ―무라카미(일본 니가타 현)에서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음식#연어#니가타 현 무라카미#사카비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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