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와대 때문에 인사 못한다”는 불만, 대통령은 알고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4일 03시 00분


나선화 문화재청장이 10일 국정감사에서 “여섯 달이 넘도록 한국전통문화대학 총장을 임명하지 않은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위에서 허가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위’가 어디냐고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이 따져 묻자 그는 “청와대”라고 말했다. 당황한 한 의원이 “그렇게 얘기하면 큰일 난다”고 면박을 줬다. 나 청장이 정무 감각은 떨어질지 모르겠으나 답변은 솔직했다. 관련 법률에 따르면 이 대학 총장은 문화재청장의 제청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다. 그런데 인사 제청 단계부터 청와대가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 청장의 답변으로 드러난 것이다.

고위 공직자 인사가 청와대만 가면 함흥차사(咸興差使)가 되는 것은 한국전통문화대학 총장뿐만이 아니다. 정부 부처 고위직은 물론이고 공공기관장과 심지어 금융권의 장이나 국공립대학 총장까지 비워둔 자리가 수두룩하다. 부처에서 2, 3배수로 후보를 올려도 청와대에서 가타부타 말이 없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고위직 인사에 대한 검증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하지만 ‘위에서 허가’하는 사항은 아니다. 아무리 검증을 철저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청와대가 반년이 넘도록 인사안을 붙들고 있는 것은 정상이라 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잇따른 인사 파행으로 물의를 빚자 올 7월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까지 새로 뒀다. 그런데도 인사 난맥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제도나 시스템 탓만은 아닌 듯하다. 장차관이 인사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자조(自嘲)가 관료사회에 파다하다. 부처 국·과장급 인사까지도 청와대 결재를 받으려고 몇 달 동안 기다려야 한다니 혹시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맞는 사람을 앉히려고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청와대 때문에 인사를 못 한다’는 하소연을 대통령은 아는지 모르겠다. 그 이유가 항간의 소문처럼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문고리 권력’이 인사에 개입하면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기 때문인지, 비선라인의 ‘보이지 않는 손’ 때문인지, 권력실세 간의 알력 때문인지 궁금하다. 아니면 사소한 것까지 박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만기친람(萬機親覽)식 인사 스타일 때문인가. 검증을 명분으로 인사를 질질 끄는 것도 솔직하지 못한 태도다. 최근 우리은행 감사에 친박연대 대변인 출신의 정수경 변호사가 선임된 것을 보면 낙하산 인사도 달라진 게 없다. 능력 아닌 ‘줄서기’ 등에 좌우되는 인사에 얼마나 많은 인재가 절망하고, 공공기관 개혁 같은 중요한 정책이 표류하고 있는지를 안다면 대통령이 이럴 수는 없다.
#청와대#고위 공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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