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發 스크린 ‘엘 클라시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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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의 마중’ vs ‘황금시대’
장이머우와 궁리, 쉬안화와 탕웨이

영화 ‘5일의 마중’에서의 궁리(왼쪽)와 ‘황금시대’의 탕웨이. 찬란·판씨네마 제공
영화 ‘5일의 마중’에서의 궁리(왼쪽)와 ‘황금시대’의 탕웨이. 찬란·판씨네마 제공
《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 8일 개봉한 ‘5일의 마중’과 16일 선보일 ‘황금시대’는 중국발(發) 거함이다. 장이머우 감독-궁리 대 쉬안화 감독-탕웨이. 더 이상 말이 필요한가. 올해 칸영화제에 초청됐던 5일의 마중과 베니스영화제 폐막작인 황금시대는 11일 막을 내린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도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둘 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나 색깔은 다르다. 5일의 마중이 1960∼70년대 문화대혁명의 광풍에 휩쓸려 생이별한 가족의 삶을 시리도록 청량하게 담아냈다면, 황금시대는 1930∼40년대 혼란기 젊은 생을 마감한 여성 작가 샤오훙(蕭紅·1911∼1942)을 담담해서 먹먹한 눈길로 쫓아간다. 》

○궁리 vs 탕웨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가 100% 컨디션으로 맞붙으면 이런 형국일까. 두 배우는 중국 전·현직 챔피언의 타이틀 매치처럼 엄청난 공력을 내뿜는다.

굳이 따지자면, 황금시대의 탕웨이는 레알의 화려한 호날두를 닮았다. 꼬질꼬질한 모양새로 걸신처럼 먹어대도 스타일이 살아 있다. 어떤 장면에서 어떤 자세로 나와도 존재감이 뚜렷하다. 고통 속에서도 자신만의 문학을 짊어진 작가의 회한을 이토록 강렬하게 표현하다니. 유부녀야, 유부녀야 몇 번씩 되뇌다가도 입을 헤 벌리고 바라보게 된다.

올해 한국 나이로 쉰인 궁리는 바르샤의 메시에 가깝다. 완벽한 무게중심을 바탕으로 별 기술 쓰지도 않았는데 수비수들을 제친다. 남편 루옌스(천다오밍·陳道明)와의 헤어짐을 안으로 삭이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아내 펑완위를 그가 아니면 누가 소화했을까. 그 세월을 살아낸 이들만 아는 깊은 맛이 우러난다. “니들이 게 맛(연기)을 알아”라며 쓰윽 찔러온다.

눈빛도 대단하지만 두 배우의 입매와 몸짓을 주목하길. 거친 풍파를 온몸으로 버텨내면서도 처연하다 못해 순진하기까지 한 입가의 변화는 가히 천의무봉(天衣無縫·선녀 옷처럼 완벽하고 자연스럽다)이다. 또한 아이를 가져 불룩한 배로 땅바닥에 너부러진 샤오훙의 양 다리, 읽지도 못하는 남편의 편지를 쥐어짜듯 들여다보는 펑완위의 어깨는 두고두고 여운이 짙다.

○ 장이머우 vs 쉬안화


역시 쉽게 어느 쪽 손을 들어주기 힘들다. 알렉스 퍼거슨과 거스 히딩크 감독이 나섰는데 누구한테 돈을 걸겠나. 다만 한동안 무협물에 매진하던 장이머우 감독이 ‘색감부터 근사한’ 작품으로 돌아와 반가움이 더하다. 2010년 잔잔한 소품 ‘산사나무 아래’가 부활의 신호탄이었다면, 5일의 마중은 밤하늘을 가득 채운 유성비 같다.

5일의 마중은 섬세하고 진중한 화면도 놀랍지만, 박주영의 따봉을 외치게 만드는 건 ‘출전선수 명단’이다. 황금시대가 탕웨이란 원톱 플레이어에 기댄 반면 장 감독은 대형 스트라이커 궁리를 중심으로 천다오밍 같은 걸출한 패스마스터와 딸 단단 역을 맡은 신예 장후이원(張慧雯)이란 날렵한 측면공격수까지 포진시켰다. 역시 인사가 만사다.

중국을 대표하는 여성감독 쉬안화는 전술적 포메이션에 힘을 줬다. 페이크 다큐멘터리처럼 등장인물이 샤오훙을 이야기하는 인터뷰 방식을 썼는데, 지인에게 남은 기억이 켜켜이 짜깁기가 되며 주인공의 다양한 면모를 드러낸다. 또한 이를 시간의 흐름에 얽매이지 않고 교차 편집해 좀더 인물의 내면 자체에 몰입하도록 만든다. 다만 상영시간이 3시간이나 되니 미리 볼일을 봐두길. 자칫하면 골 장면 놓친다.

하나 더. 두 작품 모두 ‘펑펑 내리는 눈’이 근사하다. 황금시대가 온갖 상념과 잡음까지 묻어버린 푸른 눈밭이라면, 5일의 마중은 세월의 생채기가 먼지처럼 뒤엉킨 진회색 눈발이다. 그 속엔 함박눈마저 비집고 나오는 탕웨이, 설경 속에 풍경처럼 동화된 궁리가 관객들을 맞이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궁리#탕웨이#5일의 마중#황금시대#장이머우#쉬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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