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선수들 동의 없이 생체실험 “우리가 마루타냐?”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10월 14일 06시 40분


9월 중순 한체대의 생체실험 문제가 알려진 이후 실험대상이었던 선수들은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강제적 실험동의가 없었다고 말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메시지를 보낸 인물은 한체대 염동철 교수의 부탁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위) 2009년 허벅지 근육을 적출당한 역도선수들의 허벅지에는 지금도 2개의 흉터가 남아있다.(아래). 스포츠동아DB
9월 중순 한체대의 생체실험 문제가 알려진 이후 실험대상이었던 선수들은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강제적 실험동의가 없었다고 말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메시지를 보낸 인물은 한체대 염동철 교수의 부탁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위) 2009년 허벅지 근육을 적출당한 역도선수들의 허벅지에는 지금도 2개의 흉터가 남아있다.(아래). 스포츠동아DB
■ 5년 전 허벅지근육 적출 당한 A선수 증언

한체대 염동철 교수 논문 위한 실험
“동의서 쓴 적 없다…일주일 간 통증”
9월 보도 후 은폐 위한 문자 발송도

9월 중순 수년간에 걸쳐 한체대 학생 등을 대상으로 생체검사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정당한 절차 없이 이루어진 시술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교육부도 조사에 착수했다. 이후 역도계에선 생체실험의 대상이 됐던 일부 선수들이 부당함과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2009년 한체대 염동철(46)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역도 훈련 유형에 따른 골격근 내 세포신호전달 반응의 특이성) 실험 과정에는 역도선수 18명이 참여했다. 근육 추출은 한체대 김창근 교수가 담당했다. 당시 생체실험 대상이 됐던 A선수의 육성증언을 통해 전모를 되짚어봤다. 2014인천아시안게임 여자역도대표팀 코치를 맡았던 염 교수는 국가대표 에이스의 훈련 동영상을 유출해 빈축을 샀던 인물이다. 국가대표선수 물품 횡령 의혹도 받고 있다. 현재 대한역도연맹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대상 중 한명이다.

● 역도선수의 허벅지 근육 적출, 동의는 받았나?

A선수 등 18명은 2009년 당시 한체대 역도부 소속이었다. 이 중에는 국가대표가 된 선수도 있다. 생체실험이 실시된 시점은 10월 전국체전 이후였다. A선수는 “어떤 역도선수가 자신의 허벅지 근육을 적출하는데 좋을 수가 있겠는가. 난 동의서도 쓴 적이 없었다. 반강제적이었다. 당시 염 교수는 조교 신분이었고, 한체대 역도부를 실질적으로 지도했다. 권력 관계 때문에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근육 적출 이후 허벅지에는 통증이 있었다. 일주일 이상 계단을 오르는 데 불편함을 느꼈고, 정상적 훈련도 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염 교수는 “선수들의 동의서를 받았고, 당시는 전국체전 직후라 훈련기간도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현재 동의서를 모두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5년 전 자료이기 때문에 ‘찾을 수 있다, 없다’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고 답변했다.

● 선수들 “우리가 실험용 쥐냐? 마루타냐?”

한체대 역도선수들은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또 한번 근육을 적출했다. A선수는 “실험대상이 되려고 역도를 한 것은 아니지 않나. 선수들끼리 ‘우리가 실험용 쥐냐? 마루타냐?’라는 말도 나눈 적이 있었다. 근 조직에서 나오는 정보를 알려준다고 했지만, 그런 적도 없었다”고 밝혔다. 현재 선수들의 허벅지에는 2개의 흉터까지 남아있는 상황이다. 학자·지도자로서의 법적 또는 윤리적 책임 문제가 거론되는 이유다. 이에 대해 염 교수는 “당시는 윤리 규정이 강화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실험은 내가 계획했지만, 생체검사는 김창근 교수가 직접 해준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 염동철 교수의 사건 은폐 시도 의혹

더 큰 문제는 사건 은폐 시도다. 한체대의 생체실험 사실이 알려진 이후인 9월 22일 A선수는 제3자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염동철 교수님 학위논문 관련 확인전화가 있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다음과 같이 대답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당시 실험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들었고, 근 회복도가 궁금해 실험에 동의했으며, 강제적 실험동의는 없었다는 얘길 했으면 합니다. 부탁드립니다”라는 내용이다. 염 교수는 “그 문자를 보내라고 시킨 적이 없으며, (발송 과정은) 잘 모르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이 문자메시지를 보낸 인물 B는 당시 실험에 참여했던 역도선수 출신으로, 현재는 대한역도연맹 직원이다. 그 또한 피해자인 셈이다. B는 염 교수의 부탁을 받고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트위터 @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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