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메드] 가을에 즐기는 문학 데이트, 문인들의 흔적과 마주하다

  • 입력 2014년 10월 13일 09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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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외로운 날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허하다.’ 웃고 떠들며 수많은 대화가 오고 갔지만 그것으로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런 날이면 꺼내드는 책 한 권에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때론 문학은 작은 쉼터 같았다. 시월에는 누구라도 문학에 기대어 쉴 수 있기를 바라며, 문인들의 향기가 밴 공간을 소개한다.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득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 이상, <날개> 中


예술의 혼이 담긴 ‘이상의 집’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 위치한 이상의 집은 문학가 이상이 세 살부터 스물세 살까지 살았던 집의 터 일부에 자리한다. 이곳은 실제 이상이 살았던 집은 아니지만 그가 올려다봤던 하늘, 그가 밟았던 땅이기에 의미가 있다.

이상은 1910년에 태어나 1937년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짧은 생애 중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머물렀던 것.

2009년 문화유산 국민신탁은 첫 보전재산으로 이곳을 매입하였고, 재단법인 아름지기가 관리 및 운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상의 집으로 들어서면 그의 사진과 책 등 그의 향기를 간직한 물건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이상에게 헌정된 공간인 ‘이상의 방’이 조용히 자리한다. 이상의 방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커다란 철문을 열어야 한다. 문을 열면 한 평 남짓의 작은 공간이 이상의 방이다. 이상이 살았던 쪽방과 같이 좁고 어두운 내부를 표현했다.

한줄기 빛을 따라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마당과 지붕 너머로 다시 서촌과 인왕산의 풍경, 그리고 하늘과 만날 수 있다. 이상다움이 살아 있는, 작지만 끝없이 열려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가을에 읊는 시 ‘윤동주 시인의 언덕 & 문학관’

윤동주 시인의 언덕은 청렴하고 절제된 삶을 살았던 시인의 모습처럼 소박하고 수수한 들꽃 같은 향기를 간직한다. 3호선 경복궁역에서 3번 출구로 나와 지선버스 7022, 1020, 0212번을 타고 자하문 고개에서 하차하면 고가 아래 왼쪽 언덕으로 오르는 길이 청운공원이다.

청운공원 안에 소박하게 시인의 언덕이 있는 그곳으로 오르는 길에 윤동주 문학관이 자리한다. 문학관에는 그의 친필 원고부터 시작해 책, 유품 등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다양한 물건이 전시되어 있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으로 오르면 나무 울타리나 돌 등에 손글씨로 쓴 그의 시를 읽을 수 있는데, 시의 운율을 따라 걷다 보면 오래된 소나무 한 그루와 마주하게 된다. 윤동주는 1941년 5월 연희전문학교 기숙사를 나와 소설가 김송의 집에 하숙했다. 연희전문학교 학생 시절 누상동에 살았던 윤동주의 시심(詩心)을 기리고자 2009년 종로구에서 언덕을 조성하고 시비를 건립했다.

언덕 아래로는 청운동, 옥인동, 누상동을 잇는 풍경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는 돌담을 경계로 소나무 한 그루와 삼애교회가 높이를 나란히 한다. 묵묵하게 그의 마음을 지켜온 오래된 벗처럼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든든하다. 언덕은 맑은 공기와 서울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전망으로, 도시락을 준비해 피크닉을 즐기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아름다운 시간여행 ‘이태준의 고택 수연산방’

최순우 옛집에서 나와 큰 도로변을 따라 걷다 보면 간송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작은 미술관이지만 평소 보기 어려운 한국 미술품을 볼 수 있어 전시기간(봄, 가을)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미술관을 지나면 오래된 고택 ‘수연산방’을 만날 수 있다. 수연산방은 소설가 이태준이 살던 집을 찻집으로 개조한 곳으로 조용한 분위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곳이다. 수연산방의 대문 문턱을 넘는 순간, 1930년대로 떠나는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수연산방에서는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대청마루에 앉아 전통차를 마시며 느긋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것이 그 이유다. 잠시 현실을 잊고 오래된 고택에서 자연과 더불어 전통차를 마시며, 마음속에 오래 묵혀둔 갈증을 해갈한다.

수연산방은 한국의 모파상이라고 불리는 황진이, 왕자호동 등을 집필한 작가 이태준이 1933년부터 1946년까지 거주하며 정지용, 이상, 김유정 등과 문학적 교감을 나눈 곳이기도 하다. 현재 그의 외종 손녀가 이태준의 당호를 딴 수연산방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찻집으로 운영 중이다.

내로라하는 현대문학 작가들의 문학적 교류가 있었던 곳인 까닭인지 수연산방은 오래된 기품을 풍겨낸다. 또한, 소담스럽게 내오는 차와 다과류가 일품이다.

청빈한 삶을 그리다 ‘한용운의 심우장’

수연산방에서 나와 마지막 코스인 한용운의 ‘심우장’으로 향하는 길은 멀지 않다. 큰 도로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성북 우정공원에 못 미쳐 좌측에 ‘심우장’이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그 푯말을 따라 가파르고 좁은 골목길을 5분 정도 오르면 심우장이 보인다.

심우장에서 심우(尋牛)란 목동이 소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소를 사람의 마음에 비유해 잃어버린 나, 진리를 찾아가는 구도의 모습을 표현하는 뜻이다. 심우장의 문은 24시간 개방이 되어 있어 방문객들은 언제라도 한용운 선생의 정취를 만날 수 있다.

대문으로 들어서면 왼편에는 소나무, 오른편에는 은행나무가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1933년 만해 한용운이 지은 심우장은 흔히 남향으로 지어진 한옥에서는 보기 어려운 북향집이다. 독립운동가였던 그는 남향으로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 보게 돼 이를 거부하고 북향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의 굳세고 강건한 절개가 거짓 없이 느껴지는 듯하다.

마침 필자가 심우장을 찾았을 때는 평일 오후 한적한 시간대라 방문객이 없었다.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집채만 우두커니 서 있는 까닭에 공허하고 쓸쓸한 느낌까지 감돈다. 뒤뜰을 돌아 집을 한 바퀴 돌며 ‘님의 침묵’이라는 시 한 구절을 떠올려 본다.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문화유산 ‘최순우의 옛집’

말끔하게 정돈된 최순우의 옛집은 1930년대에 지어진 근대 한옥으로 혜곡 최순우 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최순우 선생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고고미술사학자로 ‘한국의 미’ 발전에 평생을 바쳤다.

집은 서울 경기 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ㄱ’자 모양의 바깥채와 ‘ㄴ’자 모양의 안채가 맞물린 ‘ㅁ’자형 민가 형태로 꾸밈없이 소박한 느낌을 준다. 특히, 넓은 뒤뜰로 햇살이 넉넉하게 잘 들어와 북향이지만 안채를 따뜻하게 비춘다.

뒤뜰에는 선생이 심어놓은 꽃과 나무가 있다. 단풍나무, 감나무, 생강나무, 산수유 등 여러 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선생은 화려한 서양의 꽃보다는 조촐한 맛이 있는 들꽃이나 산꽃을 좋아했다.

건넌방 툇마루에는 혜곡 최순우 선생의 글을 엮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와 수필집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가 놓여 있어 인문적 교양을 쌓을 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최순우의 옛집을 찾으려면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버스를 타고 홍익중고 정류장에서 내리면 건너편에 등촌칼국수가 보인다.

등촌칼국수를 끼고 오른쪽 옆 골목으로 10m 정도 올라가면 쉽게 최순우의 옛집을 만날 수 있다.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된 최순우의 집은 서울 시민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사랑받는 관광명소다.

기사제공. 엠(M)미디어(www.egihu.com) 라메드, 에디터 김효정 (kss@egihu.com), 포토 권오경. 일러스트 이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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