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는 나의 라이벌… 타고난 모든 것과 싸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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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만에 국내 개인전 연 佛 신체행위예술가 오를랑

《 흑백으로 나누어 염색한 뒤 곧추 세운 머리, 형광색 의상, 눈두덩에 과장되게 그려 넣은 속눈썹, 그리고 반짝이로 장식한 이마의 혹 두 개. ‘몸으로 예술 하는’ 작가다웠다.
프랑스의 신체행위예술가 오를랑(ORLAN·67)이 시선을 확 잡아당기는 차림으로 10일 오후 개인전 ‘마스크, 경극 가면 디자인과 증강현실’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평창30길 갤러리 세줄을 찾았다. 2001년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 갖는 개인전이다(다음 달 18일까지).
14일 오후 2시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특별 강연도 한다. 》     
      

갤러리 세줄 전시장을 찾은 오를랑. 사진 촬영이 시작되자 그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의 마녀 크루엘라 드빌처럼 염색한 머리를 매만지고, “너무 반짝인다”며 성형수술로 만든 이마 혹의 반짝이를 털어낸 뒤, 밋밋한 팔을 화려한 토시로 가렸다. 뒤쪽으로 보이는 작품 속에서도 오를랑의 상징처럼 돼버린 이마의 혹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 사진은 디지털 기술로 피부를 벗긴 채 자유의 여신상 포즈를 취한 오를랑이 나오는 비디오 작품.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갤러리 세줄 전시장을 찾은 오를랑. 사진 촬영이 시작되자 그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의 마녀 크루엘라 드빌처럼 염색한 머리를 매만지고, “너무 반짝인다”며 성형수술로 만든 이마 혹의 반짝이를 털어낸 뒤, 밋밋한 팔을 화려한 토시로 가렸다. 뒤쪽으로 보이는 작품 속에서도 오를랑의 상징처럼 돼버린 이마의 혹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 사진은 디지털 기술로 피부를 벗긴 채 자유의 여신상 포즈를 취한 오를랑이 나오는 비디오 작품.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오를랑은 1990년대 ‘성형수술’ 퍼포먼스로 미술계를 뒤집어놓은 인물이다. 비너스의 턱(보티첼리), 모나리자의 이마(레오나르도 다빈치), 프시케의 코(장레옹 제롬), 에우로페의 입술(프랑수아 부셰), 디아나의 눈(16세기 프랑스 퐁텐블로 화파)처럼 얼굴을 고치려고 1990∼1995년 9번 성형수술을 했는데, 그 장면을 사진과 비디오로 촬영해 발표하고 일부는 위성으로 생중계했다. 서구 남성들의 입맛대로 정해놓은 아름다움의 개념에 도전하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자기 몸에 서구 미술사를 다시 썼다” “자신의 피와 살을 예술의 제단에 바쳤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번 개인전에선 중국의 경극 배우로 분장한 작품들을 내놓았다. 디지털 합성 기술을 이용해 남미나 아프리카 원주민 등 비서구 지역의 사람처럼 자기 얼굴을 ‘리모델링’하는 사진작품 ‘자기 교배(Self-Hybridization)’ 시리즈의 일부다.

―아날로그 수술이 아닌 ‘디지털 수술’이라 고생을 덜했겠다.

“고통 없이 내 몸을 조각해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할 수 있어 신난다. 주제 의식은 성형 퍼포먼스 때와 같다. 사회나 정치적 압력에 의해 변화한 몸에 관심이 있다.”

―중국의 경극 시리즈는 커가는 중국 시장을 의식한 것인가.

“오래전부터 경극에 관심이 많았다. 경극에선 여자 배역도 남자가 한다. 여자에게 금지된 영역에 도전했다는 것, 이미지의 틀을 깨고 나온다는 것이 이번 작업의 핵심이다.”

경극 시리즈는 스마트폰에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 뒤 작품의 이미지를 스캔 하면 증강현실을 체험할 수 있다. 증강현실 속에서 오를랑은 액자에서 빠져나와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마스크를 벗는다.

―다양한 마스크를 쓰고 벗는 것이 의미심장해 보인다. 다중 정체성은 디지털시대의 아바타 문화가 제기한 중요한 화두이기도 하다.

“정체성이란 고정불변이 아니라 유목적이며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 작업은 주어진 것, 타고난 것들에 맞서는 투쟁이다. DNA는 나의 라이벌이다.”

이번 전시에는 비디오 설치 작품도 있다. 피부가 벗겨진 작가의 이미지가 온몸으로 바닥의 치수를 재고, 자유의 여신상 포즈를 취하는 내용이다.

―작품을 보면 ‘나는 자유롭다. 내가 세상의 척도다’라고 선언하는 것 같다.

“예술가의 초상을 표현한 것이다. 껍질이 벗겨져 신경이 곤두선 상태, 그리고 자유로운 존재.”

―예전에 TV 프로그램에서 가수 마돈나에게 “내 소프트웨어”라며 성형수술 후 남은 신체 일부를 건네는 장면이 나와 시끄러웠다. 귀스타브 쿠르베가 여자 생식기를 그린 ‘세상의 기원’을 패러디해 남자 생식기를 드러낸 ‘전쟁의 기원’이란 작품도 내놓았다. 하는 일마다 논쟁적이다.

“프랑스 시인 르네 샤르의 시 구절은 내 좌우명이다. 이런 내용이다. ‘세상을 교란시키려 오지 않은 자는 존중할 필요도, 인내심을 가지고 대할 필요도 없다. 행복을 붙들고 위험을 무릅써라.’”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오를랑#성형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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