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싱가포르 바닷속 150m에 油類기지 준공

진두지휘한 김영 해외사업실장 “건설은 이제 匠人의 영역”

김영 현대건설 토목해외사업실장은 지난달 준공식을 가진 싱가포르 최대 규모 해저유류비축기지 ‘JRC1’에 대해 “지금까지 맡은 공사 중 최고난도의 프로젝트였다”며 “장인 정신을 발휘하기 위해 힘썼다”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현장에서 사고가 터졌다는 전화가 걸려 올까봐 매일 퇴근 후에도 새우잠을 잤습니다. 수면에서 150m 아래 해저에 터널을 뚫는 공사라 자칫하면 물이 쏟아져 들어올 수 있었거든요.”

현대건설은 최근 싱가포르에서 동남아시아 최초의 해저 유류비축기지인 ‘JRC1’을 준공했다. 5년간 이 프로젝트를 이끈 사람은 국내 건설업계에서 ‘해외건설 베테랑’으로 손꼽히는 김영 현대건설 토목해외사업실장(전무·59)이다.

6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 현대건설 본사에서 만난 그는 “입사 후 35년 중 23년을 해외에서 일하며 여러 일을 겪었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특히 어려운 공사로 기억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JRC1’은 현대건설이 해외에서 처음 수주한 유류비축기지 공사였다. 싱가포르 서남단 주롱 섬 인근의 반얀 만(灣) 지하 암반에 약 930만 배럴의 기름을 저장할 수 있는 대규모 저장고 및 유조선 접안시설을 건설하는 프로젝트였다. 지하 2층에 지어진 저장고는 높이가 10층 아파트와 맞먹는 27m, 폭은 4차로 너비와 비슷한 20m였다. 현대건설은 본사 직원을 포함해 총 2000명의 근로자를 투입해 이 매머드급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연중 32도 안팎의 고온다습한 기후 탓에 땀이 줄줄 흘러 눈에 들어가는 건 어려움 중에 끼지도 못했다. 주롱 섬 인근 해저암반은 빈틈이 유난히 많은 퇴적암으로 이뤄져 터널 작업에 적합하지 않았다. 암반을 뚫을 때마다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국내에서 같은 공사를 했다면 적절한 암반을 골라서 했겠지만 싱가포르에서는 유류단지가 형성된 이곳에서 작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사 초기엔 물이 발목까지 들어찰 때도 있었어요. 겁도 나고 공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걱정도 됐죠.”

싱가포르 서남단 주롱 섬 인근에서 지어지는 동남아 최초 해저유류비축기지인 'JRC1' 터널 공사 현장.

2010년 5월 이런 난관을 뚫고 굴착을 시행한 뒤 조촐한 기념식을 연 자리에서 직원들은 김 전무에게 “구호를 ‘파이팅!’으로 정하자”고 제안했다. 김 전무는 “이 공사는 의욕만 충만해서 될 일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끝까지) 버티자’로 하자”고 했다.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그만큼 속 타는 작업이었다.

지상 공간을 따로 활용하기 위해 사람이 근무하는 지하 석유화학시설을 지은 것도 세계 최초의 시도였다. 이 때문에 ‘안전’이 최대의 과제였다. 현대건설은 수벽 터널을 뚫어 저장된 기름이나 가스가 누출되지 못하게 하는 ‘워터 커튼 시스템’ 공법을 적용해 환경오염, 화재 등 극단적인 사고를 막을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 해저 유류비축기지 1단계 공사 준공에 성공하면서 현대건설은 추후 발주될 2단계 공사 수주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자연과 싸우는 해저 공사를 수행하다 보니 건설도 ‘장인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수백 번 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싱가포르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부탄 등지에서도 관련 공사 발주가 이어질 예정인 만큼 ‘장인의 힘’이 세계 곳곳에서 발휘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