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84>동창생 외면하는 아내의 진실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휴일 오후, 부부가 백화점 쇼핑을 갔다. 옷을 고르는데 어떤 여자가 아내의 이름을 반갑게 불렀다. “어머! ○○야. 이게 얼마 만이니?”

아내가 상대를 살피다가 말했다. “저… 아세요?” 여자가 다시 물었다. “K중학교 나오지 않았어요? 나… ××인데, 기억 안 나?”

아내가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아… 내가 K중학교를 나왔나? 그런데 선생님이셨나요?”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몇 마디 겉치레 인사를 남긴 채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아내에게 따졌다. 왜 뻔한 거짓말을 하느냐고. 자기가 나온 중학교를 기억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아내는 변명을 하지 않았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그의 아내는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를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기에 앞서 생각해봐야 할 대목도 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살면서 경험했던 것을 그 자체보다는 정서를 덧입혀 기억할 때가 많다. 특히 감성이 풍부한 여성의 경우 사실보다는 감정으로 저장해 두는 경향이 다분하다고 한다.

이에 비춰보면 그의 아내는 동창생의 얼굴을 보자마자 알 수 없는 거부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부정적인 감정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차는 바람에 상대가 누구며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듣지도 못한 채 망연자실했을 수도 있다. 안 좋은 느낌은 곧바로 상대를 ‘싫은 사람’으로 분류한다. 왜 싫은지, 그 동창생과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조차 하기 싫어 이미 오래전에 마음속 깊숙한 곳에 봉인시켜 놓았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아내는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가리키는 방향을 좇아 반응했을 것이다. 첫째, ‘내가 K중학교를 졸업했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둘째, ‘그런데 K중학교 선생님이셨나요?’.

상대를 알고 싶지 않다는 감정 표현의 선 긋기다. ‘나이 들어 보인다’는 모멸감까지 상대에게 주어가면서.

감정적 대응이 지나친 것 아닌가 생각해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녀의 감정적 대응의 이면을 따져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보자마자 싫은 느낌을 애써 누른 채 동창생과 전화번호라도 교환한다고 가정해보자. 자동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이 연결되며 아내의 사생활이 노출된다. 최악의 경우 반갑지 않은 동창생 그룹과 다시 이어지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아내는 그런 가능성들을, 남편 방식으로 하나하나 따지기보다 100배 빠른 속도의 소름 끼치게 싫은 느낌으로 차단했을 것이다.

중학생 시절의 아내와 그 동창생 사이에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아내가 굳이 털어놓지 않는다면 ‘그러려니’가 진실일 것이다.

한상복 작가
#속마음#동창생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