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육필 편지-메모로 만나는 ‘존 레넌의 맨얼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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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 레터스/헌터 데이비스 지음·김경주 옮김/528쪽·2만6000원·북폴리오

존 레넌이 1958년 애인 신시아 파월에게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위쪽)와 1970년 로드 매니저 맬 에번스에게 심부름을 부탁한 편지. 파월은 1962년 레넌의 첫 부인이 됐다. 북폴리오 제공
존 레넌이 1958년 애인 신시아 파월에게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위쪽)와 1970년 로드 매니저 맬 에번스에게 심부름을 부탁한 편지. 파월은 1962년 레넌의 첫 부인이 됐다. 북폴리오 제공
비틀스와 존 레넌의 시대에 e메일은 없었다. 스마트폰 메모장, 카카오톡도 없었다.

책은 레넌이 생전에 팬, 가족, 친구, 비틀스 멤버와 주고받은 편지와 엽서, 카드, 메모 285건을 모아 시대순으로 나열했다. 원고 내용은 따로 정서하되 레넌의 육필과 당대의 엽서 디자인을 담은 사진을 일일이 붙인 덕에 레넌의 서체는 물론이고 그가 그린 낙서와 그림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쓰인 맥락, 수신인과의 관계, 레넌의 당시 삶을 해설해 이해를 돕는다.

편지나 메모 내용의 9할은 고뇌하는 시인이나 천재 음악가로서의 존이 아닌, 유치하거나 성질 급한 평범한 영국 사람 존의 것이다. 미친 사람처럼 ‘사랑해’를 26번이나 쓰고 말미에 키스를 뜻하는 ‘X’를 신경질적으로 여러 차례 그려 넣은 걸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18세의 레넌이 막 사귀기 시작한 여자친구 신시아 파월에게 보낸 크리스마스카드 말이다. 그럴 땐 ‘러브 미 두’나 ‘쉬 러브스 유’를 틀어놓고 책장을 뒤적이는 것도 좋겠다. 사랑을 앓는 더벅머리 청년들의 세계를 들썩인 열창은 이렇게 천재가 아닌 범인(凡人)의 정서에서 나왔다. 레넌이 열두 살 때 재미로 만든 신문 ‘왁자지껄 일보’ 1면도 볼 수 있다.

대단원은 레넌이 피격 사망 당일(1980년 12월 8일) 오후, 녹음 스튜디오 직원에게 해준 마지막 사인이다. 레넌의 열성 팬이라면 놓쳐선 안 될 책이다. 언어가 되다만 감정, 완결되지 못한 글 무더기를 매끄럽게 건져 올린 옮긴이는 시인이다.

레넌의 열성 팬이 아니라면, 장롱에 있다 없어진 물건, 집안일 목록까지 시시콜콜 담은 책의 꼼꼼함에 아연할 수 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존 레넌#존 레논 레터스#비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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