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死線 넘자마자 中서 ‘지옥같은 삶’… 19세 탈북소녀의 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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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매매… 사기… ‘절망 2년’ “이젠 행복을 알고 싶어요”

2012년 1월, 백두산의 칼바람은 박동순(가명·19) 양의 옷 안을 세차게 파고들었다. 여름이면 백두산에 만발한 푸른 들쭉을 팔아 용돈을 버는 북한 양강도 태생 박 양에게 백두산은 낯선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털신만으로는 백두산의 겨울이 가져온 동상을 막을 수 없었다. 그래도 박 양은 앞장서는 동네 아주머니를 따라 눈길을 헤치며 중국으로 갔다.

4남매 중 첫째인 박 양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재혼해 의붓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박 양이 20세에 가까워지자 “여군에 가서 입을 덜든지 중국에 가서 돈 벌어 오든지 하라”고 수시로 재촉했다. 그러던 차에 동네 아주머니가 “중국 옌지(延吉)에서 종자를 고르는 일을 하면 한 달에 500위안(약 8만7000원)을 받을 수 있다”고 유혹했다.

큰맘 먹고 집을 나섰지만 사흘 만에 도착한 옌지 인근 야산에서 박 양을 기다린 것은 인신매매범이었다. 저녁 무렵 야산에서는 주변에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는 “따라오지 않으면 산에 버리고 가겠다”는 인신매매범의 말에 저항할 수 없었다.

인신매매범들의 차에 올라탔다가 눈을 떠보니 ‘연변대학’이라는 한글 간판이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 안이었다. 앞에 나타난 중국동포 사장은 “내가 돈 주고 샀으니 그 돈 갚을 때까지 시키는 대로 다해야 한다”고 윽박질렀다. 박 양은 1년 반 동안 사장 아래서 식당 서빙, 접시 닦이에서부터 온갖 허드렛일을 해야 했다. C형 간염에 걸린 것도 그때였다. 일이 너무 고돼 도망가다 붙잡힌 것도 수차례. 그때마다 돌아온 것은 구타였다. 한국행을 도와주겠다며 접근한 한국인에게 속아 모은 돈을 전부 날리기도 했다. 그나마 사장에게 통사정해 몇 푼씩 받아 엄마에게 돈을 보냈던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

박 양은 지난해 10월 한 기독교 단체의 도움을 받아 한국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한국에 온 박 양은 서울 서초경찰서 보안계의 도움으로 C형 간염 치료와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한 달 전에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도 시작했다.

대안학교에 다니며 올해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박 양은 “대학입시 준비가 너무 어려워 고민”이라고 했다. 그는 “브로커를 통해 북에 있는 엄마와 통화하는 데 80만 원 정도 든다고 하더라. 아르바이트 월급을 모아 엄마와 통화 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탈북#인신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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