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동서남북]지자체 오판에 혈세 846억 낭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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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락·사회부
정재락·사회부
‘종합운동장에서 축구전용경기장으로 변경, 유스호스텔을 짓기로 했다가 백지화….’ 2001년 개장한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의 ‘13년간 수난사’다.

울산시가 최근 관중석에 짓기로 한 유스호스텔 건립 방침을 백지화한 문수경기장(남구 옥동)은 축구전용경기장이다. 당초 관중석과 경기장 사이에 육상 트랙이 있는 종합운동장으로 설계됐지만 2002년 월드컵 이후의 활용 방안을 염두에 두고 이같이 결정했다.

이 계획은 국내 도시 간 월드컵 유치 경쟁이 가열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축구전용경기장이 있는 도시가 월드컵 유치에 유리할 것”이라는 대한축구협회 관계자의 말도 영향을 미쳤다. 울산시는 종합운동장 대신 축구전용경기장을 건립하기로 계획을 바꿨다.

40여억 원을 들인 종합운동장 설계도는 폐기됐다. 문수경기장은 재설계를 거쳐 1500여억 원으로 건립됐다. 울산시는 2005년 전국체전을 위해 800억 원을 들여 종합운동장을 별도로 지어야 했다.

문수경기장은 또 관중석과 경기장 사이에 폭 4m, 깊이 10여 m의 호(壕)가 둘러져 있다. 유럽에서 종종 벌어지는 훌리건의 경기장 난입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관중은 선수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기 어렵게 됐다.

울산시는 2012년 10월에는 문수경기장 관중석(4만4102석) 가운데 3층 관중석(8102석)에 152억 원 들여 유스호스텔(46실)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월드컵 이후 관중석이 만원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숙박시설이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다.

“잘 지은 구장의 관중석을 구태여 줄일 필요가 있느냐” “152억 원이면 관중석 대신 평지에 유스호스텔을 지을 수 있다” “유스호스텔 건설비를 보충하려면 30년이 소요되는 비합리적인 투자”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럼에도 울산시는 계획대로 추진했다.

김기현 신임 울산시장이 취임한 뒤 지난달 이를 백지화하기로 결정했지만 유스호스텔 설계비 6억 원은 이미 집행돼 예산만 축났다.

문수경기장을 당초 계획대로 종합운동장으로 지어 월드컵과 전국체전을 개최하고 유스호스텔 건립을 추진하지 않았다면 어림잡아 846억 원의 예산을 아낄 수 있었다. 문수경기장의 사례는 지방자치단체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아까운 혈세가 낭비되고 있음을 보여줘 씁쓸하다.

정재락·사회부 raks@donga.com
#울산#문수경기장#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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