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름발이 경주마, 장애인 선수 발이 되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10월 9일 17시 42분


코멘트
“달리고 싶은 마음은 말이나 사람이나 같다. 자식 같은 ‘루나’를 위해 장애인 운동선수에게 희망의 다리를 선물하고 싶었다.”(김영관 조교사)

차태현 주연의 영화 ‘챔프’의 실제 주인공으로 유명한 절름발이 경주마 ‘루나(13세·은퇴 후 제주에서 씨암말로 활동 중)’가 부산경남 지역 장애인 스포츠 선수를 위해 거액의 성금을 기부해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마사회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은 한국경마 최단 700승을 달성한 김영관(54) 조교사가 포상금과 사비를 모아 총 2500만원을 ‘루나’ 이름으로 부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한다고 밝혔다.

12일에 김영관 조교사의 700승 달성 기념식과 함께 기부금 전달식이 개최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이 기부금을 저소득 장애인 스포츠 선수들의 장비구입과 생활비에 지원한다.

김영관 조교사와 ‘루나’의 인연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이 개장을 준비하던 2003년, 김 조교사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루나’를 주목했다. 인대염으로 태어날 때부터 뒷다리를 절어 경주마로서는 치명적인 말이었다. 김 조교사는 “비록 다리를 절었지만 심폐기능이 뛰어난 말의 특징인 넓은 어깨를 지니고 있어 결점을 충분히 커버할 것 같았다”고 했다. 김 조교사의 추천으로 이성희 마주는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역대 최저 낙찰가인 970만원에 ‘루나’를 분양받았다.

● 절름발이 경주마의 감동 전하려 기부 결심

김영관 조교사는 수술대신 허리를 강하게 하는 훈련 방식으로 ‘루나’의 스피드를 올린 후 경주에 투입했다. 김 조교사의 눈은 정확했다. ‘루나’는 2005년 경남도지사배를 시작으로 2008년 오너스컵 등 큰 대회를 석권하는 등 2009년 11월 은퇴할 때까지 몸값의 78배인 7억5700만원의 상금을 벌었다. 영화 ‘챔프’의 실존 모델이 되기도 했다.

김영관 조교사가 ‘루나’에게 애착을 보인 데는 자신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는 1976년 기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체중조절 실패로 마필관리사로 전향했다. 하지만 경주마 관리 철학이 달라 조교사와 수차례 마찰을 빚다 결국 아웃사이더가 되고 말았다.

그러다 2003년 부경경마공원 개장에 맞춰 조교사로 개업했고, ‘루나’를 자신의 훈련 노하우를 적용해 명마로 조련했다. ‘루나’의 성공과 함께 김영관 조교사도 유명세를 탔고, 지금은 40여 마리의 경주마를 관리하는 스타 조교사가 됐다. 김 조교사의 관리를 받는 경주마들은 발군의 실력으로 뛰어난 성적을 냈고, 최근 그에게 통산 700승을 안겨줬다.

김영관 조교사는 “나는 ‘루나’의 가능성을 봤고, ‘루나’는 내게 조교사의 길을 열어주었다. 눈물이 고일만큼 다리가 아파도 ‘루나’는 어떻게든 결승선을 통과했다”며 “내가 받은 감동을 널리 전하기 위해 ‘루나’의 이름으로 기부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재학 기자 ajapto@donga.com 트위터@ajapto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