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대출카드를 쥐었을때 삶은 비로소 시작”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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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미스터 폭스…’ 출간 맞아 英 여류작가 오이예미 방한

‘미스터 폭스, 꼬리치고 도망친 남자’로 한국 독자를 만나는 헬렌 오이예미. 그는 양장을 곱게 차려입은 여우가 사람인 양 익살스럽게 구는 모습의 표지 삽화를 두고 “작품의 유머를 잘 담아서 굉장히 마음에 든다”며 활짝 웃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미스터 폭스, 꼬리치고 도망친 남자’로 한국 독자를 만나는 헬렌 오이예미. 그는 양장을 곱게 차려입은 여우가 사람인 양 익살스럽게 구는 모습의 표지 삽화를 두고 “작품의 유머를 잘 담아서 굉장히 마음에 든다”며 활짝 웃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소설 ‘미스터 폭스, 꼬리치고 도망친 남자’(다산책방)의 주인공인 인기 작가 세인트 존 폭스. 그에겐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상상의 존재인 ‘뮤즈’ 메리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메리가 실체를 갖춘 모습으로 그의 앞에 나타나 반기를 든다. 별다른 이유 없이 소설 속 여주인공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그를 향해 “당신은 연쇄살인마야”라며 이야기 대결을 제안한다.

메리는 수다스럽다며 아내의 목을 잘랐다가 평생 공포와 후회 속에 살아가는 의사 이야기로 폭스를 비꼰다. 폭스는 유명 작가인 자신을 흠모해 습작품을 보낸 메리의 원고를 불태우는 이야기로 반격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심장을 스스로 버린 소녀와 예술 작품에 넣을 심장을 구하러 다니는 소년의 사랑 같은, 기괴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영국 여성 작가 헬렌 오이예미가 ‘미스터 폭스…’의 한국 출간을 맞아 방한했다. 그는 지난해 10년에 한 번씩 선정하는 ‘영국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 20인’에 올랐고, ‘서머싯 몸’ ‘조라 닐 허스턴·리처드 라이트 레거시’ 등 젊은 작가에게 주는 상을 대부분 수상했다. 고교 시절 쓴 소설을 포함해 지금까지 장편 소설만 5편을 썼다. 7일 서울 주한 영국문화원에서 만나 상상력의 원천을 탐구했다.

“여성 피살 사건을 보도한 신문기사를 보면 로맨스와 폭력이 얽혀 있었어요. 마침 뒤 모리에의 소설 ‘레베카’와 잔혹동화 ‘푸른 수염’을 읽었는데,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 속에 담긴 로맨스와 폭력의 연관성을 우화적으로 다뤄보고 싶었어요.”

오이예미는 나이지리아 출생으로 네 살 때 부모와 함께 영국으로 이민 왔다. 그리고 독서를 통해 작가로 성장했다. “삶이 진정 시작하는 때는 도서관 대출 카드를 처음 손에 쥔 날이란 말이 있어요. 부모님의 대출 카드까지 동원해 잔뜩 빌린 책을 읽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어요. 하루는 성에 갇힌 공주도 됐다가 다음 날은 100살 먹은 노인이 되는 식이었죠.”

오이예미는 문단 데뷔도 파격적으로 했다. 고교생이던 그는 도입부만 쓴 소설을 출판사에 보냈다. 다음 날 덜컥 그 작품과 다음 작품의 판권까지 사겠다며 40만 파운드(약 6억8000만 원)에 계약하자는 파격적 제안을 받았다. 곧장 교사에게 과제를 빼달라고 부탁하고 나머지 소설을 완성해 출판사에 보냈다. 그 작품이 첫 소설 ‘이카루스 소녀’다. 그는 “실제 손에 쥔 돈은 그만큼 되지 않는다. 그래도 대학 진학 비용을 해결하기에 충분했다”며 웃었다.

오이예미는 9일 경기 파주출판도시 ‘2014 파주북소리’ 축제에 참가해 ‘살인자의 기억법’ 등을 쓴 김영하 작가와 대담을 나눈다. 그는 “김 작가의 작품을 읽었는데, 스타일이 흥미로웠다. 왜 영화나 다른 매체가 아닌 소설을 선택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당신은 왜 소설을 택했느냐”고 되물었다.

“소설이 나를 택했어요.”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미스터 폭스#꼬리치고 도망친 남자#오이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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