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청정지수’로 TV속 한글 오염 씻어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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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세상을 바꿉니다/9일 568돌 한글날]
문체부, 2015년 예능프로그램부터 적용해 평가 공개

“돼지가 들어오는 줄 알았어요. 가슴이 파이팅 한 여자가 좋은데… ‘선덕선덕’댔더랬지.”

“금사빠 ㅋㅋㅋ. 쑥스 해맑!”

“‘콩팥 좀 맞고 싶냐. 내가 저 기집애 죽여 버릴… 남자다잉.”

대화 내용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무언가 모욕적 선정적인 느낌을 주고 비속어, 문법에 맞지 않는 말이 가득하다. 이 말들은 동네 뒷골목이 아닌 9월 국내 지상파 방송 3사의 주요 오락프로그램에서 나왔다. 한글 공공언어의 한 축인 방송언어의 오염과 언어 훼손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다.

○ 프로그램별 방송언어 청정지수 개발

문화체육관광부는 “방송언어 오염을 막기 위해 프로그램별로 오류와 훼손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방송언어 청정지수’를 다음 달 마련할 것”이라고 8일 밝혔다.

실무 작업은 국립국어원과 인하대 국어문화원 김정자 교수팀이 맡았다. 청정지수는 프로그램 내 표현에 드러난 △인격 모독 △차별적 표현 △폭력적, 선정적인 언어 △비속어나 은어, 통신어 △불필요한 외국어 및 외래어 △비표준어 △비문법적 표현 △자막 표기 오류 등 10개 항목을 조사한 뒤 항목별로 가중치를 부여해 합산하는 방식으로 산정한다. 이 지수는 내년 초부터 주기적으로 발표한다.

국립국어원 최혜원 공공언어과장은 “그간 방송통신심의원회에서 프로그램 내 언어의 선정성, 비표준어, 외래어 등을 사례별로 심의해 해당 방송사에 주의, 경고 등을 내려왔지만 개별 프로그램 전체의 언어 오염 정도를 점수화해 발표한 적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청정지수까지 만드는 것은 방송 속 우리말이 한글 파괴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 방송 프로그램 속 비표준어, 비문법적 표현을 비롯해 인격 모독, 선정적 표현, 은어와 비속어 및 통신어 탓에 우리말 파괴가 심화된다는 비판이 주기적으로 제기돼 왔지만 언어 오염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실제 국립국어원이 2011년 지상파 방송 3사 프로그램 4개월 치를 분석한 결과 예능 프로그램은 1분에 한 번 이상 비속어, 욕설, 차별적 표현, 인격 모독 표현이 나왔다.

지난해 7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 조사에서는 ‘백투백따귀’ ‘클래스가 다른 까나리 복불복’ ‘동네 야매’ ‘ㅉㅉ, ㅠㅠ’ ‘부럽 수줍’ ‘원샷 때린다’ 등 은어나 비속어, 불필요한 외래어 등이 2011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 결과가 나오자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이 “자정하겠다”는 다짐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청률 경쟁 탓에 프로그램 속 우리말 훼손을 근절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말, 비문법적 자막을 시청자가 더 재미있게 본다”며 “우리만 올바른 우리말을 쓰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 주요 예능프로 ‘청정지수’ C, D등급

동아일보 취재팀이 국립국어원, 인하대 연구팀과 함께 1차 개발된 ‘방송언어 청정지수’를 이용해 9월 방영된 ‘해피투게더’(KBS), ‘아빠 어디가2’(MBC), ‘런닝맨’(SBS) 등 지상파 3사의 대표 예능프로그램(2회분)을 분석한 결과 무려 832개의 우리말 오류 및 훼손 사례가 발견됐다. 특히 자막표기 오류를 비롯해 은어 및 통신어의 남용과 비표준어 사용 문제가 심각했다.

‘해피투게더’의 경우 인격 모독 표현 5건, 은어나 통신어 33건, 불필요한 외국어·외래어 30건 등 총 120건의 우리말 훼손 및 오류가 나타났다. 특히 “가슴이 파이팅 한(가슴이 큰) 여자 좋아해”와 같은 선정적, 인격 모독적 표현이 잦았다. 어린이가 많이 출연하는 ‘아빠 어디가2’에서도 120건의 우리말 훼손·오류가 드러났으며 ‘해맑’ ‘#S% 때’ ‘쑥스’ 등 뜻을 알 수 없거나 비문법적인 표현이 많았다.

‘런닝맨’에선 무려 592건의 우리말 오류와 훼손 사례가 드러났다. 평균 10분 동안 33번이나 잘못됐거나 적절치 않은 표현을 쓰고 있는 셈이다. 특히 ‘드럽게 못생긴 게’ ‘○○가 세 마리네’ ‘식충이와 다를 게 뭐가 있어’ ‘너 죽이러 왔다’ 등 폭력적 표현이 많았다.

이 오류 건수에 항목별 가중치를 적용해 총점을 내보니 청정지수는 ‘아빠 어디가’(621.8점), ‘런닝맨’(581.9점), ‘해피투게더’(552.6점) 순이었다. 청정지수는 A등급(700점 이상), B등급(650∼699점), C등급(600∼649점), D등급(550∼599점), E등급(549점 이하)으로 나뉜다. 세 프로그램 모두 ‘방송언어 청정지수’가 하위등급인 C, D등급에 그친 셈.

김 교수는 “인격 모독, 선정적 표현 등이 가중치가 높아 우리말 훼손, 오류의 횟수와는 순위가 다르다”며 “젊은층이 많이 보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잘못된 우리말 표현이 자주 나오면 빠르게 전파된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청정지수를 예능뿐 아니라 드라마 토론 시사 프로그램에도 적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언어 청정지수#문체부#한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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