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소문없이 사라진 ‘30대 그룹 간담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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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재계 소통 자리였지만… 기업들 투자 계획도 공개안해
6일 간담회엔 16곳만 참여… 일각 “정부, 기업 투자 독려 소홀”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JW메리어트호텔 미팅룸. ‘주요 기업 투자 간담회’라는 현수막이 내걸린 방에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기업들의 투자 프로젝트가 조기에 실행되도록 걸림돌을 제거하겠다”며 지원을 약속했다. CEO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화답했지만 박수 소리는 예년처럼 우렁차지 않았다.

정부와 재계의 대면 소통창구인 ‘투자 간담회’가 쪼그라들고 있다. 매년 관례적으로 열렸던 ‘30대 그룹 투자 간담회’는 자취를 감췄고, 정부가 자랑삼아 발표하던 대규모 투자 고용 계획은 집계조차 못하고 있다. 과거처럼 대기업들이 손을 잡고 정부에 투자를 약속하던 시대가 지나갔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기업 투자를 독려해야 하는 정부의 의지가 약해진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 간담회 규모 대폭 축소

과거 30대 그룹 투자 간담회는 재계 최고위층과 정부가 직접 소통하는 상징적인 자리였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 때는 대통령이 ‘30대 그룹 간담회’ 형식으로 직접 총수들을 만나기도 했고, 지식경제부(현 산업부) 장관은 그룹 사장단과 연 2, 3차례씩 자리를 가졌다. 재계 순위 30위권 안팎의 그룹들은 간담회 초청장을 받은 사실 자체를 한국의 대표 그룹 반열에 올랐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30대 그룹 간담회의 하이라이트는 정부의 연간 투자·고용 목표 발표였다. 정부가 기업들을 독려해 제출받은 대규모 투자 및 고용 계획을 취합한 것이다. 지난해 1월 30대 그룹 사장단은 간담회에서 148조8000억 원을 투자하고 12만8000명을 고용하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한 바 있다.

분위기는 올 들어 바뀌었다. 올 초 간담회에서 30대 그룹 사장단은 “집계가 제대로 안됐다”며 지난해 이행 실적과 올해 계획을 공개하지 않았다.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월에 마련한 모임에서도 주요 그룹 계열사 사장들은 “계획을 차질 없이 집행하겠다”고만 밝혔을 뿐 투자 규모와 시기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6일 열린 간담회는 규모도 대폭 축소됐다. 삼성전자 LG화학 현대자동차 등 10개 그룹의 16개 계열사만 참석했다. 올 초 간담회에 참석한 그룹 중 롯데 한진 한화 CJ 신세계 등의 계열사는 참석하지 않았다. 문동민 산업부 산업정책과장은 “제조업체 위주로 간담회를 진행해 유통 물류 서비스업 등의 회사는 참석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 “개별 프로젝트에 맞춤형 지원할 것”

산업부는 6일 간담회를 마친 뒤 16개 기업이 내년까지 28조4000억 원 규모의 투자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발표한 투자 금액에는 삼성전자의 경기 평택시 반도체 생산라인 1차 투자(15조6000억 원)가 포함됐다. 산업부 관계자는 “만족스러운 규모는 아니지만 엔화 약세 등 악재 속에서 기업들이 나름대로 노력한 것”이라며 “단순히 투자액을 취합하는 것보다 개별 프로젝트의 특성을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기업 투자를 독려해야 할 정부가 임무를 소홀히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물경제 주무부처가 규제 개선 등 확실한 ‘당근’을 내놓지 못하자 기업들이 형식적으로 간담회에 나온다는 것이다.

산업부 측은 “글로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핵심 정보인 투자 계획을 공개하는 것에 거부감이 크다”며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되도록 애로 사항 해소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대기업#간담회#개별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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