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가해자 손잡고 아프리카의 한국 일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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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살 단죄’ 대신 용서로 화합 이끈 르완다 루게게 대법원장

“르완다는 ‘제노사이드(집단학살)’ 생존자와 가해자가 같은 공간에 살고 꿈꾸며 공존하는 전 세계 유일한 나라입니다. 용서와 화해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죠.”

1994년 다수인 후투족과 소수인 투치족 사이 내전으로 3개월 만에 100만 명이 ‘인종청소’를 당한 동아프리카의 내륙 국가 르완다. 대학살의 상흔이 아물기도 전에 연평균 경제성장률 7.2%의 초고속 발전을 해 ‘아프리카의 코리아’로 불린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세계헌법재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샘 루게게 르완다 대법원장(67·사진)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갖고 르완다 재건의 비결을 털어놨다.

루게게 대법원장은 “내전 후 사법부의 붕괴로 어쩔 수 없이 도입한 ‘가차차(잔디 마당)’와 용서가 뜻밖의 화합을 가져다줬다”고 말했다. 가차차는 서구식이 아닌 르완다 전통 재판 제도로 마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가해자가 만행을 고백하고 진심으로 사죄하면 피해자가 용서해주는 주민 참여 재판이다.

범죄자 처벌을 위해 1995∼2005년 10년간 1만 건이 넘는 재판 사건이 쏟아졌지만 대학살 이후 살아남은 판사와 변호사는 30명에 불과했다. 르완다 정부는 급한 대로 6∼8개월간의 특별교육을 통해 법조인을 양성하는 한편 법관 출신이 아닌 마을의 명망 있는 자를 재판관으로 세우는 가차차를 2001년 도입했다. 루게게 대법원장은 “가해자가 시신을 암매장한 위치 등 진실을 말하고 유족이 용서를 해주면 법정형의 3분의 1까지 감형할 수 있게 했다. 사법부는 또다시 선고형의 반을 수감이 아닌 공익활동으로 대체해 가해자들이 국가 재건에 이바지하게 했다”고 말했다. 르완다는 가차차와 별도로 국가통합화해위원회를 세워 학교와 마을에서 화해를 위한 교육을 계속해 나갔다. 그 결과 감옥에서 죗값을 치른 가해자가 출소 후 스스로 피해자의 집안일을 돕는 등 진정한 사죄와 용서가 이뤄졌다.

2년 전 수도 키갈리에 국제중재센터 건립을 도운 박은영 김앤장 변호사(49)는 “르완다가 분쟁의 상처를 딛고 화해와 통합을 이룩한다면 통일 후 한국에도 큰 힘이 될 것이다. 좋은 선례를 남겨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루게게 대법원장은 “완전한 봉합이 있기까지 한 세대 정도가 더 걸리겠지만 르완다의 용서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아프리카#인종#샘 루게게 르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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