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지방 10% 우유’보다 ‘무지방 90% 우유’가 잘 팔리는 까닭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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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자신이 보는 것의 지속성과 정합성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서둘러 결론 내리기를 좋아하고, 어려운 질문을 받으면 마음대로 쉬운 질문으로 바꿔 이해하려 한다.’ ―생각에 관한 생각(대니얼 카너먼·김영사·2012년) 》

한 대형마트의 노조 대표가 조합원들을 만나기 위해 한 매장을 방문했다. 이 매장의 점장은 영업에 방해가 안 되도록 직원들 휴식시간에 휴게실에서 만나라고 요구했다. 노조와 사측이 합의한 계약서에 이렇게 명시돼 있다며. 하지만 노조 대표는 사문화된 조항이라는 이유로 점장의 요구를 거부했다. 점장은 무단침입 혐의로 노조 대표를 경찰에 신고했고, 노조 대표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이후 노조 대표는 무혐의로 풀려났고 점장을 무고죄로 고소했다.

‘계약을 이행하든지, 경찰에 체포되든지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점장의 말은 노조에 대한 협박 시도인가. 아니면 노조 대표가 매장에서 조합원들과 얘기하는 것이 업무방해인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첫 심리학자인 저자의 호기심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한쪽 증거만 본 집단과 양쪽 증거를 모두 본 집단을 관찰한 결과 일방적인 정보에 노출된 집단이 더 빠르고, 단호하게 결론을 내렸다.

저자는 이를 ‘내가 보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판단을 내리는 데 중요한 요소는 정보의 완벽함이 아니라 정보의 정합성이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도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만큼의 상식을 오랫동안 쌓아 왔다. 문제는 성급하게 비합리적인 결론을 내렸을 때조차 그 결론에 과도한 확신을 갖는 데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판단을 내리는 데 필요한 결정적인 증거가 누락됐을 가능성을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정보의 포장 방식만 달라져도 잘 속는다. 같은 제품이라도 ‘지방 함유 10% 우유’보다 ‘90% 무지방 우유’를 좋아한다. 내가 보는 게 세상의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잊지 않아야 독선에 빠질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생각에 관한 생각#대니얼 카너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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