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이 만난 사람/박성원]“예산 편성권력 道의회와 나누는 초유의 聯政 실시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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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필 경기도지사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돌풍과 같이 덮쳐오는 중국 경제의 역습에 맞설 대한민국과 경기도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앞장서겠다”면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정치구조의 혁신이며 이를 위해 경기도의 연정 모델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돌풍과 같이 덮쳐오는 중국 경제의 역습에 맞설 대한민국과 경기도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앞장서겠다”면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정치구조의 혁신이며 이를 위해 경기도의 연정 모델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박성원 논설의원 swpark@donga.com
박성원 논설의원 swpark@donga.com
국회의원 시절 반짝반짝한 분석력과 풍부한 표현력으로 기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전날 원내대표직을 사퇴한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에 관한 질문에 말을 아꼈다. 그는 올 초만 해도 원내대표 출마를 통해 정치적인 도약을 꾀하겠다는 결심이 강했지만 새누리당 지도부의 SOS 요청을 받고 6·4지방선거에 나섰다. 5선 경력의 중진임에도 아직도 소장파 이미지가 남아있을 만큼 젊은 나이(49세)에 인구(1250만 명)가 가장 많은 지방자치단체 경기도의 수장이 됐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는 국내 최초의 연정(聯政) 실험은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그가 정치권 밖에서 바라본 정치권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인터뷰는 3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킨텍스 VIP룸에서 이뤄졌다.

100 대 0 권력구조 바꿔야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 시절 열린우리당 박영선 원내대변인을 겪어봤으니 소회가 있을 법한데요.

“지사가 자꾸 정치 얘기를 하면 안 되는데…. 박 의원이 사실상 당내 강경파들에 의해 쫓겨난 데는 당권과 대권 투쟁으로 요약되는 우리의 권력구조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구조 말인가요.

“대통령을 차지한 쪽과 못한 쪽이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 식으로 싸우고, 당내에서도 공천권을 차지하는 쪽과 못하는 쪽이 죽기 살기로 싸우잖아요. 세월호 특별법 하나를 놓고도 야당은 어떻게든 정부를 최대한 흔들어 보려 하고 야당 내에서도 당권을 쥐려는 세력들은 자기 당의 원내대표를 흔들어대는 거죠.”

남 지사는 국회에 있을 때 새정치연합 우윤근 의원과 함께 권력구조 개편을 비롯해 정치 혁신 국가모델 연구를 위해 의원들을 모으고 토론회를 조직했다. 도지사를 하면서도 정치구조 혁신에 대한 관심이 줄기는커녕 더욱 깊어지고 있는 것 같다. 비록 도(道) 단위에서지만 여야가 함께 참여하는 연정을 적극 추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정무부지사직을 사회통합부지사로 명칭을 변경해 야당에 추천권을 넘기는 식으로 여야 간 협치(協治)와 독일식 연정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내각제에서 의석의 50%를 독자적으로 채우지 못할 때 정당들이 연합해 정권을 잡는 것이 연정 아닙니까.

“지금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리스크 중에 가장 큰 게 정치 리스크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정치’라는 거예요. 여야가 늘 극단적 갈등 속에 어떻게 하면 상대를 때려눕힐 것인지에만 골몰하고, 대통령에 당선되면 발목 잡는 의회와의 갈등 속에 트랩에 빠져버리고, 말년에 가서는 측근비리 때문에 탈당 요구를 받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이렇게 5년이 돌아가죠. 이건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겁니다. 선거는 51% 대 49%로 끝났는데 권력은 100 대 0으로 나누니까 서로 네거티브하고 (야당은) 대통령 일 못하게 끌어내리려 하고,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겁니다. 최소한 6 대 4 정도로 권력을 나눠야 극단적 싸움을 줄일 수 있다는 거죠.”

독일식 연정 로드맵 진행중

―경기도의 연정 실험도 대표적 실행 수단인 사회통합부지사의 야당 추천이 아직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현실적으로 무리한 시도 아닌가요.

“(야당이 추천하는) 사회통합부지사는 여론조사를 해보면 도민이 압도적으로 원하고 있어요. 반드시 실현될 것입니다. 이미 야당 쪽과 정책합의도 했고, 도내 주요 기관장들에 대한 인사청문회 요구도 받아들였습니다. 지금 연정 로드맵을 만들고 있어요. 도의회의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상임위원회로 두는 것도 포함시킬 것입니다.”

―국회도 예결특위를 상설화한다고 맨날 여야가 다 공약했지만 여전히 안 되고 있는데요.

“국민이 낸 소중한 세금을 예결특위 선에서 부실하게 심사하고 여야가 쪽지예산을 통해 나눠먹기 하는 것을 없애야 합니다. 376조 원의 한 해 나라 예산 중에 1조 원 정도는 정부가 편성할 때 아예 여야가 쪽지예산 등을 통해 나눠먹을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경기도에서부터라도 예결위를 상설화해서 예산을 짜는 단계부터 도의회와 함께하도록 할 것입니다. 예산 편성 권한을 도의회와 나누겠다는 것이죠. 말하자면 연정을 인사에서 예산으로 확대하겠다는 겁니다.”

대통령중심제의 모델인 미국의 경우 예산 편성권이 의회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의회가 예산 편성권까지 가져오지는 못하더라도 상설화한 예산결산위에서 정부의 예산 편성 단계에서부터 감시 견제 균형을 꾀하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그렇게 못하고 있는 것은 국회의 낮은 신뢰도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남 지사가 역설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도 결국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좀 줄이고 의회에 좀 더 나눠주자는 것인데 국회가 이토록 불신을 받는 상황에서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럼 이대로 가자는 말인가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가서야 되겠습니까? 독일의 경우 바이마르헌법의 극심한 혼란을 겪은 뒤 그 반동으로 히틀러가 나와 철권통치를 했죠. 그 후 시대를 고민하는 학자 종교인 정치인들이 모여 수년간 토론한 결과 질서자유주의 철학에 기반해 지금의 안정적인 권력분산형 총리제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권력구조하에서 현재와 같은 연정이 가능한 것입니다.”

與혁신위, 개헌논의도 해야

―새누리당의 대표적인 쇄신파 출신으로서 새누리당의 요즘 보수혁신위원회와 민주당의 정치혁신실천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날 독일의 영광을 만들어준 정치구조를 만드는 일은 바로 독일의 민족과 국가를 걱정하는 정치인들이 한 것입니다. 우리 정치인들도 지금 그런 고민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새누리당이든 새정치연합이든 피상적 혁신에 매몰된다면 결국 분칠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새누리당 보수혁신위가 개헌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문제가 있어요.”

경기도의 신성장산업 곧 공개

―2년전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을 만드는 데 앞장섰죠. 몸싸움을 막겠다며 만든 법안이 ‘식물국회 만드는 법’이 됐다는 비판이 높은데요. 몸싸움 퇴치라는 취지에만 매몰돼 악법을 만든 것 아니냐는 거죠. 다수결이라는 대의민주주의 원칙을 실종시킨 것 아닌가요.

“전기톱, 쇠사슬과 망치가 난무하는 국회는 더이상 안 된다는 국민 요구가 하늘을 찔렀잖아요. 그렇다고 국회선진화법이 만능이라는 건 아니에요. 이건 과도기적 법입니다. 우리가 왜 싸웁니까. 앞서 말한 100 대 0, 잘돼야 90 대 10의 권력구도에서 여야가 죽기 살기로 싸우는 거잖아요. 당내에선 공천권을 쥔 사람의 눈에 벗어나지 않으려고 온갖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거잖아요. 이런 권력구조와 공천권 문제를 개혁하면 몸싸움은 자연히 없어지고 국회선진화법도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입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여권의 차차기 대선주자 1순위는 남 지사라고 하는데,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저는 지금 그런 데 관심이 없고요. 오직 일로써 성과로써 보여드릴 겁니다. 정치적으로는 앞서 말한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보여줄 거고요. 서울은 지금 포화상태라서 새로운 덩어리의 성장 잠재력이 들어갈 곳은 경기도밖엔 없어요. 중국의 부상이 태풍과 같은 기세입니다. 중국의 휴대전화 제조업체 샤오미의 회장은 ‘돼지도 태풍의 길목에 서면 하늘을 날 수 있다’고 했어요. 대한민국도 경기도도 이런 태풍을 역풍이 아닌 순풍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을 준비해야죠. 제2판교, 일산 한류월드 등에서 과거와 다른 미래 신성장산업들을 조만간 국민들께 선보일 것입니다. 그런 것을 통해 미래로 가는 준비를 할 겁니다. 그러다 보면, ‘뭐 남경필이 괜찮네’라고 하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볼게요.”

     
      
▼ 南지사의 3大 가족사 ▼
“아들, 후임병 폭행 인정… 반성 의미로 항소 포기”


남경필 지사는 얼마 전 가족 문제로 삼중고를 치렀다. 장남의 군부대 폭행 성추행사건과 동생의 운송사업체에 대한 특혜 논란, 그리고 부인과의 이혼이다. 개인사 가족사에 대한 질문에 남 지사는 다소 무거운 표정을 보였지만 답변을 피하지 않고 비교적 담담하게 소회를 밝히고 잘못 알려진 부분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장남이 8월 후임병 폭행과 추행혐의가 드러나 구속영장이 청구됐죠. 영장은 기각됐지만 기소돼 1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습니다. 사건이 불거지는 와중에 남 지사는 신문에 군내 폭행과 관련한 기고문을 실어 비판이 더 커졌어요. 왜 아들이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됐다고 생각하세요.

“먼저 정치를 하면서 가족에게 소홀했던 저 자신에 대한 반성이 큽니다. 아버지로서 아들 교육을 성실히 다하지 못한 데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하고요. 저희 아이도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8일 면회를 갔는데 아들이 항소를 하지 않겠다고 하더라고요. 가해 사실을 다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판에 형을 줄이자고 가깝게 지냈던 피해자들이 다시 2심에 나와 힘들게 얘기를 하도록 만들고 싶지 않다는 거죠. 한 가지 아들에게 고마운 게 있어요. 사람이 잘못은 할 수 있지만 그걸 다 인정하는 게 쉽지 않은데 인정하고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8월에는 수도권의 공항버스 노선을 둘러싸고 동생이 운영하는 업체에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는데….

“공항버스를 10년 넘게 독점 운영한 업체가 있었는데, 동생의 업체가 경쟁에 뛰어들어 가격을 더 다운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며 노선 참여를 신청하는 사업계획서를 낸 것입니다. 법적으로도 신청에 문제가 없고 주민 입장에서도 요금이 더 낮아지니까 원하는 바이지만 논란을 무릅쓰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냥 신청 단계에서 포기한 것입니다.”

―8월 장남 문제로 곤혹스럽던 시기에 부인과 이혼(8월 11일)에 합의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사적 영역이기는 하지만 이혼 사유가 뭔지 설명해줄 수 있습니까.

“(잠시 망설이다) 앞서 정치인으로서 가족들에게 소홀히 한 데 대해 말씀드렸죠. 지금도 자주 연락하고 잘 지내고 있고요. 다만 정치인의 아내로서 짊어져야 할 책임과 부담감이 너무 컸던 것 같습니다.”

박성원 논설의원 swpark@donga.com
#남경필#아들#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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