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종수]이 모든 혼란은 결국 공권력에 대한 불신 때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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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연세대 교수 행정학
이종수 연세대 교수 행정학
안타깝다. 167일 만에 세월호 특별법이 합의되었다지만 마음은 안타깝다. 비극적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민낯이 다 드러났다. 304명이 희생된 사건을 100일 정도의 시간이면 완전한 정치싸움으로 치환시키는 우리의 분쟁 기질이 그렇고, 재난에 대한 반성과 공감대를 갈등으로 소진시켜 버린 손실이 그렇다.

서로 예(禮)와 체통을 잃고 말았다. 유족들은 폭행 혐의로 입건되고 국민들은 비극적 사고를 당한 유족들에게 거부감을 느껴야 하는 상황에 당혹해한다. 야당은 강경파의 압박으로 합의를 두 번이나 번복하며 국회를 공전시키다 머쓱하게 돌아왔다. 사고수습과 무관한 것처럼 냉담하던 여당은 뒤늦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지 않게 된 사태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자축을 하고 있다. 도저히 선진국을 자처하는 사회의 재난 처리 모습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풍경이다.

사고의 발생과 구조과정은 그랬다 치더라도 어디서부터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던 것일까? 유족들이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고 불온한 세력이 농성을 이끌었던 게 혼란의 원인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내가 그 비극적 희생자의 유족이 되었더라도 똑같은 농성을 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에 집착했을 것이다. 에어포켓 타령으로 며칠을 기다리게 하다 자식의 시체 한 구씩을 나눠주고 집으로 가서 조용히 수사를 지켜보며 보상을 기다리라고? 아마 농성장에 난입하여 노란 리본을 훼손하던 사람들이나 유족들의 단식을 폭식으로 조롱하던 사람들도 그처럼 거대한 비극적 사건의 유족이 되어 보면 똑같은 저항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권력, 특히 검찰과 경찰, 그리고 국가정보원을 신뢰할 수 없던 데서 갈등과 싸움이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유족의 입장에서 검찰의 수사를 믿을 수 있었겠는가? 왜 노후한 세월호가 인천∼제주 운항권을 독점하게 되었는지, 세모의 2245억 원의 빚 가운데 정부가 공적자금으로 떠안은 146억 원을 단돈 6억5000만 원에 어떻게 털어낼 수 있었는지, 유병언의 로비는 어디까지 뻗쳤는지 밝혀줄 가능성이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실제로는 50억 원 골프채 로비가 없었고, 대통령은 7시간 동안 청와대에서 일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을 밝히고 시비를 규명할 메커니즘이 우리 사회에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권의 지지 세력은 공권력을 신뢰하지만 반대 세력은 늘 불신의 불을 지핀다. 나아가 본말이 전도된 투쟁을 벌이기 일쑤다. 오죽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년을 발목, 반목 정치로 어렵게 보냈다’고 했겠는가? 박 대통령뿐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도 비슷한 한탄을 한 적이 있다. 공권력, 특히 신뢰를 받아야 하는 권력기관들이 권력에 따라 춤을 추니 그 부메랑으로 반목과 갈등이 사회에 끊이지 않고 정권에는 음모론이 돌아간다.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탓하기는 어렵다. 국정원 댓글 사건과 간첩증거 조작, 윤일병 사망사건에서 국방부가 보여준 축소 은폐, 권력에 약한 검찰의 모습을 최근에도 사람들은 보아왔기 때문이다. 검찰을 믿지 못해 특검을 주장하고, 특검마저 믿지 못해 피해자들이 진상조사위를 구성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요구하는 지경이다.

‘신뢰’라는 책에서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분류했던 대로 한국사회는 저(低)신뢰 사회에 해당할 듯하다. 저신뢰 사회는 신뢰 사회라면 지불하지 않아도 될 갈등의 비용을 천문학적으로 지불해야 한다. 이번에 나타난 갈등과 국회 파행, 국민적 공감대의 실종, 정책 마비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손실이었다. 사회와 정치에는 갑론을박이 있을지라도 검찰과 경찰, 국정원 같은 권력기관은 추상같은 공정성으로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사회적 공공성을 유지할 수 있고 그것으로 좌우의 극렬 집단을 잠재우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권력기관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는 첩경이고,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전환의 계곡’을 잘 통과하는 지름길이다.

이종수 연세대 교수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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