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 한마디에 사이버 검열… 국내 IT기업 흔들릴 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4일 03시 00분


검찰이 지난달 18일 ‘온라인 명예훼손 엄벌’ 방침을 밝힌 후 ‘사이버 망명’이 급증하고 있다. ‘개인 대화를 검찰이 들여다본다더라’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토종 인터넷 메신저인 카카오톡에서 독일의 텔레그램 같은 해외 서비스로 갈아타는 사람이 늘었다. 텔레그램 이용자는 검찰 발표 1주일 만에 하루 2만 명에서 25만 명으로 급증해 앱스토어의 다운로드 순위에서 카카오톡을 제치고 1위에 올랐을 정도다. 보다 못한 다음카카오가 그제 “대화 내용 저장 기간을 5∼7일에서 2∼3일로 줄이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사태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고 말하면서 시작됐다. 누리꾼들이 대거 사이버 망명을 시작하자 검찰은 “메신저 같은 사적 공간은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경찰이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의 카카오톡 계정을 압수수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검찰을 못 믿겠다는 분위기가 됐다.

사이버 언어폭력과 명예훼손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감내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것이 사실이다. 악의적인 댓글과 허위사실 유포 같은 불법 행위는 수사해 처벌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대통령의 한마디에 곧바로 검찰이 나서서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 침해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카카오톡은 사용자 1억5000만 명, 하루 메시지 건수가 60억 건이나 된다. 일일이 모니터링하기도 힘들고 법을 어기지 않은 사람들은 압수수색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보통 누리꾼들까지 해외 서비스로 탈출하는 것은 검찰과 정부에 대한 불신(不信)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악성 댓글과 유언비어 등을 막는다는 입법 취지는 타당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의 지나친 ‘윗분의 뜻 받들기’가 국내 정보기술(IT) 기업을 곤경에 빠뜨리고 해외 IT 기업만 신나게 만들고 있다.
#온라인 명예훼손#사이버 망명#카톡#텔레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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