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우산혁명’]경찰 최루탄-고무총 무장… 일촉즉발 상황서 ‘극적 실마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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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정 특파원 현장 4信]렁춘잉 행정장관, 시위대에 대화 제의

홍콩의 도심 점거 시위대와 홍콩 정부가 극적으로 대화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물리적 충돌이 빚을 상황에 대한 부담 때문으로 풀이된다. 시위대로선 당초 예고한 최후통첩 시한을 넘기게 되면 정부청사 점거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지만 혼란을 우려한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정부로서도 지난달 28일부터 닷새째 이어진 시위를 계속 용인할 수 없는 데다 최루탄 사용 등 강제 진압에 나서면 대규모 저항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몸을 사려 왔다. 이 때문에 양측은 표면적으로는 서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식의 위협공세를 펴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출구를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2일 밤 홍콩섬 애드미럴티(金鐘)에 있는 정부청사 부근은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학생 시위대가 정부에 제시한 렁춘잉(梁振英) 행정장관의 사퇴 시한(3일 0시)이 다가오자 경찰은 청사 방어를 위해 병력을 이곳으로 집결시켰다. “렁 장관이 사퇴를 거부한다면 청사들을 점거하겠다”고 선언한 시위대도 경찰과의 충돌에 대비해 마스크와 고글, 비옷 등으로 다시 무장했다.

경찰은 시위대에 정부청사를 점거하거나 포위하면 심각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티븐 휘 홍콩 경찰총부 대변인은 “불법적인 청사 포위를 묵과하지 않겠다”면서 최루탄 사용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오후 시위대가 지켜보는 가운데 대놓고 최루탄과 고무탄환 곤봉 등 시위 진압장비들이 담긴 박스들을 청사 내부로 반입하는 ‘무력시위’를 벌였다. 이어 오후 7시경에는 청사 정문의 수비 병력 중 일부가 고무탄 발사기를 휴대한 인력으로 교체됐다.

중국 정부도 이날부터 시위대를 겨냥해 맹렬한 여론전에 돌입했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는 “홍콩 시위는 다수의 민의를 수렴하지 않은, 소수의 사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며 “홍콩 경찰의 법에 따른 처리를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산당 중앙선전부 기관지인 광밍(光明)일보는 시위를 “극단적 반대파가 기획 선동한 법치 파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당장 홍콩 정부가 강제 해산에 나설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 적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홍콩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렁 장관과 측근들이 ‘시간 끌기’ 전략을 채택했다. 시간이 지나가면 일반 시민들이 시위대에 등을 돌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청사 점거 시위를 앞두고 시위대 내부에서도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시위 주도 세력 중 한 곳인 ‘센트럴을 점령하라(센트럴 점령)’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위안하이원(袁海文) 씨는 “대학생으로 구성된 홍콩전상학생연회(香港專上學生聯會)와 중고생 조직인 학민사조(學民思潮), ‘센트럴 점령’ 등 세 단체는 렁 장관 퇴임과 중국 정부의 ‘가짜 직선제’ 방침 철회라는 두 가지 목표는 공유하지만 전술에서는 생각이 다르다”고 말했다.

양측 모두 대안 없는 대립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정부는 본토인들의 홍콩 여행을 제한하는 등 경제적 압박에 들어갔다. 이는 홍콩 민심을 시위대로부터 떼어놓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홍콩 시위는 국제 문제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일 오후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의 예방을 받는 자리에 예고 없이 합류해 “미국은 홍콩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홍콩 당국과 시위대 간의 입장차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앞서 왕 부장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이 문제를 놓고 정면충돌했다. 케리 장관은 왕 부장과의 회담에 앞서 “우리는 홍콩 당국이 강경 진압을 자제하고 시위대가 평화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표출하는 권리를 존중해 주기를 희망한다”며 압박했다. 왕 부장은 홍콩 시위가 8월 미국 퍼거슨 시 흑인 폭동과 비슷하다며 “홍콩 문제는 중국의 내부 문제”라고 반박했다.

이런 가운데 1일 미국의 40개 도시를 포함해 런던 등 전 세계 64개 도시에서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시위가 열렸다.

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홍콩 우산혁명#홍콩 민주화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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