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이재만입니다” 전화 한통에… 부장자리 내준 대기업 CEO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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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실세 사칭 50대 무직자 조모씨, 1인 2역 취업 사기

“청와대 총무비서관 이재만입니다.”

지난해 7월 초 박영식 대우건설 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이재만 비서관을 자칭한 한 남성의 전화를 받았다. 이 남성은 “조○○ 장로를 내일 오후 3시에 보낼 테니 취업을 시켜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이튿날 오후 박 사장을 찾아온 조 씨는 “총무비서관이 보내서 왔다”며 대학 학·석사 학위, 대학교 겸임교수 등 가짜 서류를 건넸다. 박 사장은 조 씨가 이 비서관의 추천을 받을 정도의 경력과 능력을 가진 것으로 믿고 다음 달 대우건설 주택사업본부 계약직 부장으로 채용했다.

이 비서관을 사칭한 사기꾼이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를 감쪽같이 속여 취업까지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임관혁)는 2일 “이 비서관이 추천했다”며 허위 학력과 경력이 기재된 응시원서를 제출해 대우건설과 KT의 CEO를 속인 혐의(업무방해)로 조모 씨(52)를 구속기소했다.

검찰 조사에서 조 씨는 “수년 전 종교단체 활동을 하며 이춘상 전 박근혜 의원 보좌관과 알게 됐고, 이 전 보좌관의 소개로 (당시 박 의원 보좌관이던) 이 비서관을 한 번 만나 명함을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 최측근이던 이 전 보좌관은 2012년 12월 대통령선거 직전 강원도 유세 과정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조 씨는 정치권과의 작은 연결고리를 교묘히 이용해 대우건설에 취업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조 씨는 1년 가까이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출근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업무능력도 떨어졌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회사 측은 올해 7월 조 씨를 퇴사시켰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민간기업이 청와대에 약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청와대 비서관이라고 하는데 어디에 확인할 곳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조 씨의 ‘대통령 측근’ 사칭 범행은 계속됐다. 올해 8월 이 비서관의 휴대전화번호와 비슷한 번호의 휴대전화를 개통한 뒤 황창규 KT 회장에게 연락해 똑같은 수법으로 취업을 시도했다. 황 회장을 만난 조 씨는 “VIP(대통령) 선거 때 비선조직으로 활동했고 10년 전부터 VIP를 도와왔다. 현재도 VIP를 한 달에 한두 번 면담하고 직언을 하고 있다. VIP에게 정부산하기관 기관장이나 감사로 갈 수 있으나 회사에 취업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는 등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황 회장은 조 씨의 신분을 수상히 여겨 신분 조회를 한 뒤 청와대에 신고했고, 청와대는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수사를 의뢰했다. ‘청와대 실세의 힘’을 내세워 대기업 CEO를 농락한 조 씨의 꼬리가 잡힌 것이다.

조 씨는 전북 전주에 있는 한 교회의 장로로 일정한 직업 없이 기독교 청장년단체와 봉사활동 조직 등의 사무총장 직함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여든이 넘은 아버지가 뺑소니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는데 생활이 어려웠다. 내 이력과 학력 경력으로는 정상적으로 취업하기 어려워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실토했다.

조 씨는 과거에도 여러 지인에게 “힘 있는 사람에게 얘기해 전북도청이나 현대자동차, 교사로 취업을 시켜주겠다”며 수천만 원을 가로챈 혐의(사기 등)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집행유예 기간에 자신이 직접 사기 취업에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

최우열 dnsp@donga.com·조건희 기자
#이재만 사칭#대우건설#청와대 총무비서관#취업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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