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희 “힙합 모자 쓰고 백팩 멘 한복… 색다르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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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복 디자이너 이외희씨, 아시아 시장 진출 겨냥 패션쇼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코엑스의 ‘2014 아시아 전략시장 진출 투자 쇼케이스’ 행사장. 키가 170cm를 훌쩍 넘는 늘씬한 여자 모델이 한복 차림으로 나타나 워킹을 시작했다. 그런데 어딘가 ‘한복 같지 않은’ 모양새가 눈길을 끌었다.

모델은 머리에 힙합 가수들이 즐겨 쓰는 회색 비니 모자를 쓰고 있었다. 겉옷으로는 검은색 벨벳으로 만든 액주름포(두루마기의 일종으로, 겨드랑이 부분에 주름을 준 옷)를 입었다. 풀어 헤쳐진 액주름포 사이로는 가슴말기(가슴을 조여 주는 속옷의 일종)가 보여 묘하게 섹시한 느낌을 자아냈다.

다른 모델들도 마찬가지였다. 얼핏 보면 해외 유명 브랜드 제품을 연상케 하는 전모(氈帽·조선시대 여성들이 외출용으로 쓰던 우산 모양의 모자)를 쓴 모델도 있었다. 한 남자 모델은 아예 백팩을 메고 나타났다.

더욱 신기한 것은, 낯선 느낌에도 불구하고 모델들이 입은 한복이 거의 가공되지 않은 전통 복식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모델들은 단지 겉옷과 속옷을 바꿔 입거나, 대님 등 일부분만 간소화한 한복을 입고 있었을 뿐이었다.

패션쇼를 준비한 사람은 전통 한복 디자이너인 이외희 씨(41·여·사진). 이 씨는 이날 ‘K-솔(Soul), K-빌드(Build)’라는 주제로 40여 종류의 한복을 선보였다. 그는 “입는 순서를 바꾸거나 저고리를 바지 안으로 넣는 등 ‘코디’만 조금 바꿔도 ‘스타일’ 자체가 변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이번 패션쇼는 한복의 과거(기생들과 조선시대 한복)와 현재(생활한복 등), 미래를 차례로 보여주는 형태로 진행됐다. 이 씨는 “조선시대 ‘패셔니스타’였던 관기들의 옷을 재조명함과 동시에 요즘 20, 30대가 좋아할 만한 패션을 제안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행사를 위해 한 달 동안 매일 10∼12시간을 일하며 작품 대부분을 직접 만들었다.

이 씨가 한복 공부를 시작한 건 10년 전 일본 사람들의 ‘기모노 사랑’을 본 뒤부터다. 그는 “일본 사람들은 수천만 원 하는 기모노를 사서 물려 입고, 관련 교육도 활발히 하고 있었다”며 “우리에게는 그런 문화가 없을뿐더러 기술자들도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이후 한국궁중복식연구원에서 공부한 그는 2008년부터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갤러리 ‘외희’를 열고, 사람들에게 한복 제작법 등을 교육하고 있다.

이 씨는 2007년 혼자서 중국, 유럽을 돌며 한복을 입고 ‘프리허그’ 이벤트를 진행했을 정도로 ‘한복의 세계화’에 열정적이다. 그는 “당시에는 한복을 보고 ‘기모노’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였지만 이제는 다르다”며 “기회가 된다면 케이팝(K-pop·한국 대중음악) 가수들과도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이외희#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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