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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사진 직접 찍어 상품화… 산업이 된 ‘직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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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사진 직접 찍어 상품화… 산업이 된 ‘직찍’

이새샘기자 , 임희윤기자 입력 2014-09-25 03:00수정 2015-01-2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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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서 사진 공유’ 취미 넘어 수억원대 거래
20일 오전 김포국제공항에 고가의 DSLR카메라를 든 여성 수백 명이 몰려들었다. 이날 중국 베이징으로 출국한 아이돌 그룹 엑소(오른쪽 사진)를 찍으려는 ‘대포’들이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은 오전 8시 50분이었지만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새벽부터 몰려들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앗, 저기 온다!” 순간 카메라 셔터 소리가 김포공항 출국장을 가득 메웠다. 20일 이곳은 대형 카메라를 든 젊은 여성들로 새벽부터 붐볐다. 아이돌그룹 엑소 멤버들이 이날 오전 8시 50분 비행기로 중국 베이징에 간다는 소식을 용케 알아내 나타난 ‘대포’들이었다. 어림잡아 300명은 돼 보였다. 공항 관계자는 “평소의 절반도 안 온 것”이라고 귀띔했다. 언론사 사진기자들이 취재용으로 쓰는 것보다 높은 사다리에 비싼 망원렌즈로 무장한 대포도 있었다. 일부는 “잘 다녀올게”라는 인사를 남기고 출국장을 빠져나갔다. 베이징 현지 공연 ‘직찍’을 위해 멤버들을 따라 출국하는 대포들이었다. 》

대포들의 직찍 문화는 이제 취미생활을 넘어 수억 원 규모의 ‘지하산업’으로 성장했다. 팬들 사이에서 ‘찍덕’ ‘대포’로 불리는 이들은 아이돌의 사진을 찍어 팬들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포토북 같은 관련 물품을 제작해 대량으로 판매한다. 한국 특유의 팬 문화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아이돌 그룹 멤버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초상권과 저작권에 대한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 3만∼5만 원 포토북 위해 기자 사칭도

대포의 역사는 아이돌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이들은 스타를 따라 공연장과 방송사의 생방송 프로그램 촬영현장, 각종 제작발표회와 출국장을 쫓아다니며 아이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대포들은 10대를 포함해 젊은 여성들이 거의 대부분이고, 고가의 렌즈를 장착한 DSLR 카메라를 많이 쓴다. 지난달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방로 KBS 별관 ‘뮤직뱅크’ 녹화장에서 만난 박모 양(16)은 “42만 원짜리 렌즈를 쓰고 있다”면서 “다른 대포들처럼 홈페이지를 만들어 포토북을 파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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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들은 어렵게 촬영한 사진을 포토북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가격은 권당 3만∼5만 원 선. DVD와 포스터 등을 제작해 사은품으로 끼워주기도 한다. 이들은 트위터나 홈페이지를 통해 포토북 제작 계획을 홍보하고 구매자들에게 ‘선입금’을 받아 수량을 확인한 뒤 포토북을 만든다. 양질의 종이에 칼라 인쇄를 하기 때문에 제작 단가는 일반 책보다 높은 권당 1만∼2만 원 선이다. 권당 2만∼3만 원의 순수익이 생기는 셈이다. 서울 충무로의 한 인쇄소 대표는 “대개 한 번에 1000부 정도 주문을 하는데 젊은 여자들이 와서 한 번에 1000만∼2000만 원을 입금하곤 한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포토북 외에도 수건, 텀블러, 에코백, 담요, 달력 등 제작 물품 종류가 다양해졌다.

물품을 제작하기 전에 먼저 돈을 받는 방식이기 때문에 사기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최근에는 엑소 멤버인 시우민의 대포홈에서 포토북을 판매하겠다면서 입금받은 뒤 배송을 하지 않아 팬들이 단체로 홈페이지를 개설해 항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공개된 입금액 규모는 총 3000여만 원. 최근 포토북이 일부 배송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아직까지 상당수 팬들은 “배송이 늦은 데다 당초 약속했던 것보다 포토북이 부실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대포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자 언론용 행사에 기자를 사칭해 들어가는 일도 발생한다. 지난달 11일 서울 마포구 상암산로 CJ E&M 사옥에서 열린 ‘EXO 90: 2014’ 제작발표회에서는 명함 한 장 때문에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20대 여성이 “인터넷 신문 기자”라며 명함을 내밀고 입장했는데, 이를 수상히 여긴 홍보 담당자가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하자 엉뚱한 중년 남성이 전화를 받은 것이다. 가짜 명함이었다. 이 담당자는 “일부 팬들이 가짜 명함으로 몰래 들어오고 외국인이 들어본 적 없는 해외 언론 이름을 대고 오기도 하는데 무작정 막을 수 없어 곤란하다”고 말했다.

포토북을 잘 만드는 대포들일수록 ‘사생팬’일 가능성이 높다. 포토북을 팔려면 더욱 귀한 직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비공개인 아이돌의 해외 공연 일정도 용케 알아낸다. 아이돌 팬페이지 운영진으로 활동했던 최모 씨(26)는 “일부 대포들은 공항 입출국심사 때 아이돌 멤버 뒤에 따라붙어 카메라로 여권을 촬영한 뒤 확대해 여권번호를 알아내는 방법을 사용한다”며 “대포 본인이 사생팬이거나 사생팬과 함께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 “팬심으로 건진 걸작”…사생활 침해 논란도

포토북의 구매자는 대부분 팬들이다. 이들은 대포들의 직찍이 초상권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은 ‘블랙 상품’임을 알면서도 눈감아준다. 합법적인 파생상품 시장에서 살 수 있는 포토북이나 머그잔 속 스타보다 훨씬 다양한 모습의 스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이돌 공연장에서 만난 김모 양(15)은 “대포들은 기자도 못 찍는 순간까지 다 찍는다. 사진 질도 훨씬 좋다”며 “인피니트 멤버 성열이 SBS ‘정글의 법칙’ 촬영 때문에 카리브 해에 갔는데 경유지인 브라질까지 따라간 대포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대포들은 포토북 판매 수익금으로 아이돌의 생일 선물이나 ‘조공’을 주도한다. 사생활 침해, 초상권 침해 등 문제를 일으키는데도 대포가 팬들 사이에서 용인되는 이유이다.

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포토북을 산 적이 있다는 중학생 신모 양(15)은 “보통 멤버들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 포토북을 판매한다고 하지만 정확한 액수는 공개하지 않는다”며 “나중에 멤버들에게 무슨 선물을 보냈는지 인증샷을 올리는데 이걸 보고 대충 얼마 정도 썼구나 짐작한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조공 경쟁이 과열되기도 한다. 명품시계와 고가의 음악 장비, 컴퓨터, 대형TV 등은 기본이고 멤버 부모의 선물까지 챙긴다. 최근 영화 ‘카트’에 출연한 엑소 멤버 디오의 경우 팬들이 출연진과 제작진에 식사와 디저트 250명분을 제공하고 감독에게는 티세트와 디퓨저, 작가에게는 건강보조식품과 고급 전통주를 선물했다.

아이돌 그룹의 기획사도 아이돌 대포의 저작권 및 초상권 침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다. 기획사가 이를 제재할 경우 팬덤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갓 데뷔한 신인 아이돌 그룹에게 대포의 존재는 인기를 견인하는 필수 요인이다. 최근에는 대포들의 활약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움직임도 있다. 아이돌 그룹 갓세븐의 기획사인 JYP는 1월 갓세븐의 쇼케이스를 진행하며 ‘팬 프레스 존’ 제도를 운영했다. 카메라 장비를 갖춘 팬들에게만 따로 신청을 받아 좌석을 주고 사진 촬영을 허용한 것이다.

국내 정상급 기획사 관계자는 “팬이 없으면 스타가 없는 아이돌 문화의 속성상 이런 행태를 방조하는 기획사가 다수”라며 “저작권이나 초상권 침해에 민감한 일본에서조차 한국에서 유입된 사설 직찍, 포토북 문화가 활성화되고 있다. 기획사 차원에서 이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해외팬덤이 ‘판’ 키웠다

남미-중동서도 단체로 포토북 주문… 한류 스타들 4개 언어로 판매 홍보

걸그룹 ‘소녀시대’의 멤버 태연의 팬페이지 ‘플라잉 페탈’이 판매한 포토북. 대포들은 아이돌을 촬영한 사진을 포토북으로 제작해 판매한다. 스티커와 엽서 등 사은품도 함께 제공한다. ‘플라잉페탈’ 트위터


1494만965개.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에 개설된 엑소 멤버 루한의 팬페이지 ‘루한바’의 24일 현재 게시물 수다. 한국의 게시판과 유사한 개념인 ‘바(파)’는 각종 자료를 신속하게 업로드하고 이에 대해 빠르게 피드백을 할 수 있어 중국 내 팬 문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중국 베이징 출신인 루한은 한국에서 데뷔한 아이돌 중에서도 중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멤버로 꼽힌다.

포토북 판매가 산업화하고 조공이 억대 규모로까지 과열된 것은 이처럼 막대한 규모의 해외 팬덤이 유입되면서 판을 키웠기 때문이다. 최근 포토북 해외 판매 시장은 중국, 동남아, 일본 등 아시아 지역을 넘어 중남미, 유럽, 중동으로까지 넓어지고 있다. 슈퍼주니어, B1A4 등 해외에서 인기가 높은 아이돌 그룹의 경우 포토북 판매 공지는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4개국어로 올라온다. 이들은 페이팔 같은 해외결제시스템을 이용해 실제 포토북 가격에 육박하는 배송비를 부담하면서 포토북을 대량으로 단체 구매한다.

최근에는 중국인이나 일본인 대포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보통 유학생 신분으로 한국에 건너와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중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슈퍼주니어를 보기 위해 한국을 찾은 공뤼훙 씨(20)는 “중국에서 포토북을 산 적이 있는데 100위안(약 16만 원)이었다. 중국인이 한국에 와서 사진을 촬영해 중국에서 제작한 포토북이었다”고 전했다.

외국인 대포들은 해외 스케줄이 많은 아이돌 그룹의 직찍을 생산하는 데는 국내 대포들보다 오히려 유리하다. 한국에서 사진을 찍더라도 제작 원가가 훨씬 저렴한 중국에서 포토북을 제작해 더 큰 수익을 노리기도 한다.

하지만 일부 외국인 대포들은 포토북 대금을 받은 뒤 제품을 배송하지 않고 본국으로 튀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아이돌 팬 이모 씨(29)는 “해외 대포는 국내 대포에 비해 경험이 적어서인지 포토북 제작이나 배송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아 해외 대포의 포토북은 잘 구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아이돌 팬덤 용어 ::

대포

망원렌즈를 장착한 전문가용 카메라, 또는 그런 카메라를 갖고 다니며 아이돌 그룹 멤버를 촬영하는 팬을 가리키는 말. 대포처럼 길게 튀어나온 망원렌즈의 외양에서 착안한 용어.


대포홈

대포들이 주축이 돼 운영하는 팬 사이트. 대포가 촬영한 다양한 비공식사진을 볼 수 있어 팬들이 모여듦.


찍덕


사진을 찍는 덕후(오타쿠)의 준말. 대포와 비슷한 말.


직찍

대포나 찍덕이 촬영한 스타의 비공식 사진으로 ‘직접 찍었다’의 준말.


포카


포토카드의 준말. 가요 제작사에서 음반에 부록으로 스타의 사진을 끼워 넣는 공식 포토카드도 있지만, 주로 팬들이 자체 제작한 카드를 일컫는 은어로 쓰인다. 팬들에겐 우표나 딱지처럼 중요한 수집대상이다.


굿즈


스타의 얼굴이 그려진 컵이나 수건 같은 상품. 영어 ‘goods’에서 온 말. 스타 공식상품 시장이 일찌감치 발달한 일본 음악시장에서 들어온 용어. 발음은 ‘구쯔’로 한다.


사생


스타의 사생활을 뒤쫓는 팬. 사생팬의 준말. 사생과 찍덕, 대포는 교집합을 이루는 경우가 흔하다.
조공

팬이 스타에게 주는 선물을 총칭하는 말. 종속국이 종주국에 때맞추어 예물을 바치던 일이나 그 예물을 가리키는 사전적 정의가 변형된 것.

이새샘 iamsam@donga.com·임희윤 기자 손가인 인턴기자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4년   
#아이돌#지하산업#대포#포토북#기자 사칭#사생활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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