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후 런던大 JHK도시건축정책연구소장 “서울역 고가 공원화 신중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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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재생 프로젝트 전도사’

김정후 박사는 도시 재생 작업에 대해 “도시 쇠퇴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에 맞는 해결 방식을 모색하는 대신 다른 도시의 것을 무조건 차용할 경우 오히려 더욱 쇠퇴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도시 재생’이라는 개념이 없을 시절 도심 재개발로 옛 자취를 잃어버린 서울 종로구 피맛골을 찾은 김 박사. 이전 전시해놓은 조선시대 시전행랑의 주춧돌인 장초석에 기대어 섰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김정후 박사는 도시 재생 작업에 대해 “도시 쇠퇴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에 맞는 해결 방식을 모색하는 대신 다른 도시의 것을 무조건 차용할 경우 오히려 더욱 쇠퇴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도시 재생’이라는 개념이 없을 시절 도심 재개발로 옛 자취를 잃어버린 서울 종로구 피맛골을 찾은 김 박사. 이전 전시해놓은 조선시대 시전행랑의 주춧돌인 장초석에 기대어 섰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서울역 고가도로를 철거하지 않고 공원화한다고요?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김정후 박사(45)의 말은 의외였다. 그는 저서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2013년)에서 해외의 폐선 부지를 공원화한 사례를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모범으로 소개했다. 런던대 UCL 지리학과 도시연구 펠로와 런던대 JHK 도시건축정책연구소장으로 연구 활동을 하며 한국에 올 때마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와 연구기관에서 특강을 하는 ‘도시재생 프로젝트 전도사’다. 산업단지 5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주제발표와 서울시 도시건축정책 자문회의를 위해 13일 방한한 후 25일 출국할 때까지 서울 인천 마산 등에서 도시재생을 주제로 7차례 특강을 한다. 그가 주목할 만한 재생 프로젝트에 고개를 갸웃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고가도로를 공원화하는 일은 서둘러 결정할 사안이 아닙니다. 왜 철거를 하지 않고 남겨야 하는지, 남기기로 했다면 왜 그것이 공원이 돼야 하는지, 운영은 어떻게 하고 비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충분히 논의해야지요. 유행을 좇듯 남의 성공 모델을 그대로 따를 것이 아니라 부지 조건과 상황을 꼼꼼히 검토해야 합니다.”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의 모델인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 공원. 공중의 버려진 열차 선로를 재활용한 공원으로 뉴욕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각광받고 있다. 푸른숲 제공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의 모델인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 공원. 공중의 버려진 열차 선로를 재활용한 공원으로 뉴욕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각광받고 있다. 푸른숲 제공
서울시가 5일 발표한 이 프로젝트는 올해 말 철거할 예정이었던 938m 길이의 서울역 고가를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을 뛰어넘는 녹지 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내용이다. 서울시는 발표 2년 만인 2016년 말 완공할 계획이다. 뉴욕의 명물 하이라인은 공중의 버려진 열차 선로를 활용한 공원인데, 시민사회의 격렬한 찬반 토론을 거쳐 2009년 완공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총길이가 서울역 고가의 두 배가량인 1.6km이고, 비영리 단체가 주도한 사업이라 추진력을 발휘할 수 없었음을 감안해도 서울역 고가 공원화는 서두르는 감이 있다. 더구나 해외 성공 사례는 모두 폐선이고, 고가도로를 공원화한 사례는 드물다.

김 박사는 “공중에 공원을 만들어 유지하는 데는 지상 공원보다 많은 예산이 들고 어려움이 따른다”며 세금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창의적인 재활용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공 사례로 파리의 고가 철로를 공원으로 재활용한 프롬나드 플랑테(4.5km)를 예로 들었다. 뉴욕의 하이라인보다 앞서 1994년과 2000년 단계적으로 개장한 공원인데 철로는 산책로로, 아래 버려진 공간은 아틀리에, 상점, 레스토랑, 카페를 유치해 수익을 내고 있다.

서울역 고가도로와 함께 요즘 전국적인 관심을 받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마포구 매봉산 자락에 있는 마포석유비축기지(10만1510m²) 재생 사업이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테러 위험이 있어 폐쇄된 채 버려져 있던 이곳을 서울시는 2016년 말까지 공연장과 상설 전시장을 갖춘 문화공간으로 바꾸기로 했다.

김 박사는 “영국 런던의 화력발전소를 재활용한 테이트모던 미술관이 성공한 후 유행처럼 낡은 산업시설은 전시장이나 공연장으로 활용하는데 이건 상상력이 빈곤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원과 공공시설은 다다익선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공원이나 미술관을 지어놓고 사람이 오지 않을 경우 결국 도시의 골칫거리가 될 겁니다. 주거, 상업, 교육시설 등 실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방법을 고민해야지요.”

그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이 대규모 가스 저장고 가소메터 재생사업을 할 당시를 예로 들며 “활용 방안에 대한 의견이 모아지지 않을 경우 당장 뭔가 만들어내려 하지 말고 다수가 합의하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 남겨두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핵심”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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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감소, 산업구조 변화, 주거환경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경제사회 환경적으로 활성화하는 작업. 신축 위주의 도시 개발과 달리 공장 조선소 기차역 등 쓸모가 없어진 시설을 재활용해 역사성과 장소성을 살리는 작업을 중요시한다. 지난해 12월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발효됐으며 국토교통부는 올 4월 서울 종로구, 광주 동구, 부산, 충북 청주 등 13곳을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지정해 계획수립비 전액(13억1000만 원)과 사업비의 20%(280억 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도시 재생#김정후#서울역 고가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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