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개평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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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닷새간의 긴 추석 연휴가 끝났다. 고향의 정과 함께 화투(花鬪)의 추억을 담아온 분들도 많을 것 같다.

화투는 우리 삶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고스톱 민화투 섰다 등 종류도 많다. 그래서일까. 2006년에 영화 ‘타짜’가 684만 명의 관객을 모으더니 올해도 ‘타짜-신의 손’이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타짜’와 ‘타짜꾼’은 국립국어원 웹사이트에 표제어로 올라 있다. 이 말은 ‘달인(達人)’을 뜻하는 일본말 ‘닷샤(達者)’에서 왔다. 일제강점기에 많이 쓰다가 광복 후 타짜로 바뀐 것이다.

화투판에서 잘못 쓰는 말도 많다. ‘꼬평(깨평)’이 대표적이다. ‘개평’이 옳다. 노름이나 경기 등에서 남이 딴 몫에서 조금 나눠 받는 공것이 개평이다. 노름 용어인 것은 맞는데 어원은 정확하지 않다. 조선어사전(1938년) 등에는 ‘가평(놀음판에서 구경꾼에게 주는 돈이나 물건)’으로 나온다는 점에 주목해 가평에서 변한 말로 보기도 한다(조항범 ‘그런, 우리말은 없다’). 하지만 조선말큰사전(1947년)에서는 개평을 표준어로 삼고 가평을 사투리로 본다. 최근에 나온 사전 역시 마찬가지다. 한자 ‘낱 개(個)’와 조선 중기부터 후기까지 통용되던 엽전 ‘상평통보(常平通寶)’를 뜻하는 ‘평(平)’이 합쳐진 것으로 해석한다. 얼마 안 되는 돈이라는 뜻이다. 개평과 비슷한 말로 요즘 ‘뽀찌’라는 말도 쓰는데, 이 또한 어원이 정확하지 않다.

화투를 치다 보면 가끔 비기기도 한다. 이때 ‘파토가 났다’라고들 하는데 ‘파투가 났다’라고 해야 한다. 판이 깨졌으니 파투(破鬪)인 것이다. 이를 ‘나가리’라고도 하는데, 나가리는 ‘무효’ ‘허사’를 뜻하는 일본말 ‘나가레(流れ)’를 잘못 발음한 것이다.

‘섰다’에서는 땡잡은 사람과 황잡은 사람이 나오게 마련. 땡은 같은 짝 두 장으로 장땡(10이 두 장인 경우)이 가장 높고 9땡, 8땡 순으로 내려갈수록 끗수가 낮아진다. 황잡다의 황은 짝이 맞지 않는 패로 끗수가 낮아 십중팔구 돈을 잃는다. 그래서 땡잡다에 ‘뜻밖에 큰 행운이 생기다’, 황잡다에 ‘뜻밖에 큰 낭패를 당하다’는 비유적 의미가 생겨났다.

도박과 놀이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얼마 안 되는 판돈을 걸고 잠시나마 타짜 소리 들어가며 기분 좋게 개평을 나눠주고 끝낸다면 놀이가 아닐까. 자칫 그 맛에 빠져 진짜 타짜가 되려고 한다면 인생 ‘파투’ 나기 십상이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개평#화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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