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안전사고 대책에 대한 우리의 착각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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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규찬 영국 러프버러대 디자인스쿨 교수
전규찬 영국 러프버러대 디자인스쿨 교수
일벌백계, 성역 없는 수사, 실체적 진실 규명 등 세월호 특별법의 수사권, 기소권 논쟁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안전 개선 노력이 거꾸로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는 안전사고와 안전 개선에 대해 두 가지 심각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착각은 사고의 ‘객관적’인 진실 규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안전사고의 실체와 진실을 객관적으로 규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안전사고는 인간, 환경, 시스템 속의 복잡한 여러 요인이 결합되어 발생한 현상이다. 그러므로 책임 소재와 원인은 관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자 한다면 사고의 결과를 모르고 판단해야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불가능한 진실 규명 노력과 관련자의 수사 및 기소에 집중한다면, 오히려 공정함을 달성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안전 개선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두 번째 착각은 더 많은 책임자 색출과 처벌이 세상을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건 아니다. 물론 고의적인 위반, 심각한 직무 태만은 용납할 수 없고, 책임과 처벌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고 조사 과정에서 근본 원인을 파악하기보다는 자기 방어적이고 표면적인 조사가 되기 쉽다. 결국 근본적인 안전 개선이 아니라 오로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어 체계를 세우는 데 급급하게 된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두려움이 줄어들고 안전이 점점 우선순위에 밀리면서 또 다른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이다.

1964년 마틴 루서 킹이 한 말이 지금의 대한민국에도 교훈이 될 것 같다. 3명의 백인 우월주의자가 흑인 7명을 연쇄 살인한 사건이 밝혀졌을 때, 마틴 루서 킹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묻기보다는, 무엇에 책임이 있는지 묻자”라고 호소했다. 그가 말한 ‘무엇’은 가해자의 마음속에 있던 증오, 차별, 편견, 편협, 두려움이 될 수도 있고, 그 당시 미국 정치의 상황, 법 제정과 적용의 현황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객관적이기 힘든 근거를 더 찾아내어 몇 명 더 책임자를 찾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사고와 희생자가 의미 있게 기억되고 사회 변화의 씨앗이 되는 것이 아닐까. 객관적인 진실 규명과 누가 잘못했는지에 집중하기보다는 무엇이 관련자들을 그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하도록 했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로 진정한 안전 개선이 시작되기를 바란다.

전규찬 영국 러프버러대 디자인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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