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화 간첩 조작 의혹 3탄] “간첩을 잡은 게 아니라 만들었다”

동아닷컴 입력 2014-08-03 17:33수정 2014-08-03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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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증언> ‘최초 내사’ 소진만 전 경기경찰청 보안수사대장
● 경찰이 만든 e메일로 ‘간첩질’한 이상한 간첩
● “국정원은 처음부터 ‘간첩 아니다’ 못 박아”
● “남한 사업가 체포·북송? 그런데 왜 피해자가 없나”
● ‘신동아’ 의혹 제기 후 “언론 접촉 말라, 죽는다” 협박 받아
여간첩 원정화(40) 사건은 경찰, 검찰, 국가정보원, 기무사령부가 총동원된 대형 간첩사건이었다. 2008년 8월 사건이 처음 공개될 당시 합동수사팀은 “2005년부터 3년간 원씨를 내사했다”고 밝혔다. 원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국가보안법 위반(간첩, 목적수행, 자진지원·금품수수, 잠입·탈출, 찬양·고무, 회합·통신)을 비롯해 다양했다. 검찰은 원씨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보위부) 공작원이라고 밝혔다.

‘신동아’는 최근 2006년 7월부터 2008년까지 원씨를 내사한 소진만(61) 전 경기지방경찰청(경기청) 보안수사대장과 여러 차례 인터뷰를 했다. 그는 원씨 사건을 최초로 내사했던 인물이다. 2007년 초까지 보안수사대장으로 수사팀을 이끌었고, 보안수사 2대장으로 물러난 후에도 수사에 직·간접으로 간여했다. 원씨 사건 당시 그는 기무사 관계자에게 “원씨는 간첩이 아니라 경찰의 협조원이라 말했다”는 내용의 진정서 때문에 감찰조사를 받기도 했다. 진정서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2012년 초 소씨는 기무사를 상대로 ‘음해 투서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을 요구하는 고소장을 검찰에 내기도 했다. 그러나 기무사와 경찰 고위 인사의 간곡한 요청과 사과를 받고 소를 취하했다.

소씨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을 꺼냈다.

“나는 1979년부터 30년 넘게 대공사건만 수사했다. 그런데 이렇게 이상한 간첩은 처음 봤다. 원씨는 자기 손으로 e메일도 못 만드는 간첩이었다. 원정화는 특수훈련을 받지도 않았고 남파간첩도 아니다. 원씨 사건은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부풀려졌다. 간첩을 잡은 게 아니고 만들었다. 다시는 이런 식의 간첩 사건이 만들어져선 안 된다.”
다음은 소 전 대장과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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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김 선생’ 실체

▼ 여간첩 원정화 사건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나.
“2006년 7월 경기청 보안수사대장으로 부임했다. 보안수사대가 2개로 나뉘어 있었는데, 내가 통합대장을 맡았다. 발령을 받고 보니 상황이 좋지 않았다. 공작비를 허투로 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대원 중 3분의 1은 술이 취한 채 출근해 자기 의자도 못 찾고 있었다. 수사회의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보안수사대 건물이 지하 1층, 지상 2층이었는데, 지하에 가 보니 보안수사대의 온갖 공작서류가 물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지하에 물이 새서. 보름 넘게 그걸 정리했다. 트럭 2대 분량의 공작서류를 소각하고 쓸만한 정보를 추리는 과정에서 캐비닛에 잠자던 원정화 관련 첩보서류를 처음 확인했다.”

▼ 어떤 내용이었나.
“정신적으로 불안한 증세가 있고 군 관계자나 경찰 등 정보요원들과 접촉이 잦다는 정도였다. 집중관찰이 필요하다고 적혀 있었다. 첩보는 A4 2장 분량밖에 안 됐다.”

▼ 그때부터 내사에 들어갔나.
“확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중점 공작사항으로 분류했다. 원씨를 아는 전직 경찰 이OO 씨 등 동료들의 도움도 받았다. 그들도 확인이 필요하다고 알려왔다.”
(소 전 대장의 동료인 이OO 씨는 2005년 원씨와 중국에 다녀왔을 만큼 가깝게 지낸 인물이다.)

▼ 어떻게 내사를 진행했나.
“2006년 말, 원씨와 가깝게 지내던 경찰 Y를 내가 정보원으로 포섭했다. 당시 Y는 용인의 한 경찰서에 근무 중이었다. Y에게 구두 각서를 받고 임무를 부여했다. 원정화에 대한 내사 사실·수사 방향을 알렸다. Y를 정보원으로 포섭한 사실은 경기청 윗선에도 보고했다.”

▼ 당시 무엇을 확인하고자 했나.
“훈련을 받고 남파된 간첩인지, 지도원이 있는지, 있다면 누구인지였다. 지도원이 없는 간첩은 없다.”

▼ 수사팀은 어떻게 구성됐나.
“원씨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 중에 군인이 유독 많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기무사와 협조했다. 총괄지휘는 내가 맡았다. 기무사 요원들도 내 지휘를 받았다.”

▼ 내사 당시 검찰에는 보고를 했나.
“안 했다. 필요가 없었다.”
▼ 정보원인 Y에게선 어떤 보고가 올라왔나.
“원정화가 술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 정신적으로 엄청 불안하다는 것 등이었다. 한번은 Y를 시켜 원씨의 집을 수색한 적도 있다. 방바닥, 천장, 심지어 밥그릇 속까지 다 뒤지게 했다. 그런데 간첩 혐의가 될만한 증거가 없었다. 이상했다. 특수훈련을 받은 흔적도 없었다.”

▼ 원씨가 특수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건 어떻게 확인했나.
“간첩수사 때 기본은 ‘육체 검열’이다. Y를 통해 육체 검열을 실시했다. 그러나 훈련을 받은 여자라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예를 들어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경우 얼굴은 예쁘지만 송곳 하나 들어가지 않는 몸을 가지고 있다.”

▼ 간첩 혐의가 전혀 없었다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2007년 초 Y를 통해 ‘원정화가 중국에 있는 북한사람인 김 선생과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보고를 받고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원씨는 항상 ‘김 선생’이라고 표현하며 메일을 주고받았다. 난 그 대목에서 ‘김 선생이 지도원이면 원정화는 간첩이 맞다’고 판단했다.”

▼ ‘김 선생’이 누군지는 확인됐나.
“당시는 이름도, 직업도 몰랐다. 그냥 무역업에 종사하는 북한사람 정도로만 파악했다. ‘김 선생’이 북한 단동 무역대표부 부대표란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김 선생’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중국으로 우리 요원을 파견하기 직전 나는 보안수사 2대장으로 밀려나면서 수사팀에서 배제됐다.”

▼ 그럼 2007년 초 이후 수사 내용은 모르나.
“아니다. 수사팀에서 배제됐지만, 내가 심어놓은 정보원 Y, 보안수사대 후배들을 통해 수사 내용을 보고받았다. 또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주무부서인 보안 1대에 넘겼다. 2007년부터 원정화가 일본에 드나들기 시작한 것도 내가 알려준 사실이다.”

“원정화, 남파간첩 아니다”

▼ 원씨와 ‘김 선생’이 주고받은 메일은 어떤 내용이었나.
“문어 장사와 관련된 것이 많았다. 원씨가 한번은 ‘국정원 요원들이 북한 관련 정보를 달라고 해서 귀찮아 죽겠다. 북한 쪽 루트를 만들어달라고 한다’고 짜증을 내는 메일을 ‘김 선생’에게 보냈다.”

▼ ‘김 선생’은 거기에 대해 뭐라 답변했나.
“특별한 답을 안 한 걸로 기억한다.”

▼ 또 다른 내용은 없었나.
“한번은 원씨가 말을 못하는(농아)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보내달라는 요청을 했다.”

▼ 농아들은 왜 보내달라고 한 것인가.
“농아 관련 단체를 통해 뭔가 돈벌이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김 선생’은 요청을 받고 ‘그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답을 했었다.”

▼ 원씨가 ‘김 선생’과 메일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은 어떻게 확인했나.
“내가 Y를 수사에 투입한 게 2006년 11월경이다. 그런데 Y는 이미 9~10월경 원정화의 부탁을 받고 e메일을 만들어줬다고 했다. 원씨가 그 e메일을 통해 ‘김 선생’과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김 선생’의 존재가 확인된 것이다. 원씨는 인터넷도 모르고 e메일도 만들 줄 모르는 희한한 간첩이었다.”
(이와 관련 지난 7월 12일 원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e메일은 내가 만들었다. 어떤 문제가 생겨 Y에게 내 e메일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알려준 적은 있다. 당시 내가 쓴 e메일 계정은 ‘wjw**** @hanmail.net’이다”라고 주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원씨에게 e메일을 만들어주고 결정적인 정보를 수사팀에 제공했던 Y는 원씨 수사과정에서 정보통신법 위반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원씨 명의 e메일을 무단으로 들여다 봤다는 혐의였다.)

▼ 원씨는 북한 단동 무역대표부 김교학(김 선생) 부대표에게 지령과 공작금을 받아 간첩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는데.
“김교학과 돈 거래가 있었다면 그건 사실 김교학과 문어 장사를 하면서 주고받은 돈이다.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씨가 문어값으로 돈을 보냈다. 내사와 체포가 이뤄질 당시 원씨는 김교학과 문어 장사를 하다가 거의 망한 상태였다. 원씨가 김교학과 크든 작든 정보를 주고받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원정화는 절대 북한에서 지령을 받고 내려온 간첩이 아니다. 지령을 받고 왔다면 그동안 원씨가 사귄 경찰·군인이 우선 포섭 대상이 됐어야 했다. 사건 당시 원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딸은 원씨에게 볼모와도 같았다. 아마도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만들어진 사건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 내사 단계에서 국정원은 어떤 역할을 했나.
“‘김 선생’의 존재를 파악해달라고 내가 국정원에 정식으로 요청했다. 그런데 국정원은 ‘원정화는 우리 협조자’라고만 답했다.”

▼ 국정원은 원정화를 보위부 간첩이 아니라고 본 것인가.
“(국정원은 원정화가) 간첩이 아니라고 처음부터 못을 박았다, 자기들 협조자라고. 그래도 나는 확인은 해야 한다고 판단해 내사를 진행했다.”

▼ 국정원의 협조는 없었나.
“없었다. 경찰 수뇌부도 내가 원씨 수사 문제로 국정원과 접촉하는 걸 싫어했고 막았다.”

▼ 공작 과정에서 원씨를 직접 만난 일은 있나.
“안 만났다. 수사대장인 내가 원씨를 만날 이유가 없었다.”

문어 장사 하다 망한 여자

▼ 원정화의 중국 행적은 조사했나. 본인은 한국인 사업가와 탈북자 등 100여 명을 체포해 북송시켰다고 주장하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피해자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피해 사실을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어떤 간첩이 포섭 대상인 경찰관에게 돈(2300만 원)을 빌린 뒤 갚지를 않나. 오리지널 간첩이라면 활동비를 받을 텐데. 일반인·경찰에게 돈을 받아 문어 장사하고. (내사를 진행하는 내내) 정말 이상했다. 수사결과 발표 때 원정화가 주장한 내용을 듣고 웃었다.”
(7월 12일, 원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Y에게 돈을 빌린 적 없다”고 주장했다.)

▼ 2006년 8월, 원씨는 조선족 김용순(가명)과 함께 중국 심양에 있는 북한영사관을 출입했다. 당시 동행한 김용순이 사진을 찍어 수사팀에 제공했다. 사진이 찍힐 당시 당신이 내사 중이었는데, 몰랐나.
“그때는 몰랐다.”

▼ 원씨 간첩 주장에 의혹을 제기한 ‘신동아’ 기사(4월호, 5월호)를 봤나.
“봤다. 내가 그 기사 때문에 협박을 많이 받았다. ‘언론과 인터뷰하지 말라’는 압력이었다. ‘인터뷰하지 마라, 죽을 수 있다’고 했다.”

▼ 누구에게 협박을 받았나.
“알 만한 사람이다. 실명을 거론하고 싶지는 않다.”

▼ 원정화 간첩사건을 평가한다면.
“원씨의 간첩 혐의 대부분은 본인의 주장에만 근거하고 있다. 이것도 다른 간첩사건과 다른 점이다. 지금 한국에는 북한 단위마을별로 6~7명 이상의 탈북자가 들어와 있다. 마음만 먹으면 수사과정에서 원씨의 주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고 수사결과를 발표한 것인지 의문이다. 하여간 나는 그렇게 이상한 간첩은 처음 본다. 그리고 자세히 언급하긴 곤란하지만, 간첩이라고 하기엔 사생활이 너무 복잡했다.”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4년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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