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강수진]네버엔딩 스토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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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 문화부장
강수진 문화부장
“이거 없으면 뻘쭘뻘쭘∼.”

서너 걸음마다 마주친 상인들은 야광봉을 들이대며 외쳤다. ‘그걸 흔드는 게 더 뻘쭘하겠네’ 싶어 지나쳤는데 웬걸, 야광 머리띠까지 한 아줌마들이 수두룩했다.

지난 주말 저녁 모처럼 야외콘서트를 다녀왔다.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열린 이승철의 ‘나이야∼가라’ 콘서트. ‘희야’ ‘네버엔딩스토리’ ‘마지막 콘서트’를 라이브로 들으며 귀가 호사를 누렸다.

데뷔 30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승철의 보컬은 여전했지만 예민해 보이던 눈매와 날렵한 턱선은 세월 따라 둥글둥글해졌다. 풋풋하던 오빠부대도 넉넉한 중년이 돼 부채를 나눠주며 팬클럽의 의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 젊은 날을 기억하는 사람과 함께 늙어가는 기쁨이여.” 오래된 영화 대사 한 토막이 머리를 스쳐갔다.

중년 관객들은 ‘나도야 간다’를 개사한 ‘나이야∼가라/나이야∼가라’를 목청껏 합창했다. 여름밤 야외 공연의 백미는 물대포가 쏘아댄 물폭탄이었다. ‘해변으로 가요’의 흥겨운 리듬과 함께 신나게 물을 흠뻑 뒤집어쓰던 그 순간,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던 건 나뿐이었을까.

올봄 문화계는 긴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이어진 사회적 애도 분위기와 집단 트라우마 속에 웃고 즐기는 모든 것이 꺼려졌다. 봄나들이 대목을 앞두고 지역 페스티벌이 줄줄이 취소됐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세월호 여파로 취소·축소된 지역 행사는 328건, 이로 인한 관광업계 손실은 570억 원이다. 지역 경제의 피해도 크지만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김밥 할머니나 야광봉 상인 같은 하루벌이 노점상들은 당장의 생계를 위협받는다.

세월호 참사가 한 달을 넘기면서 문체부는 문화예술 활동을 ‘조용하고 차분하게’ 재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자취를 감췄던 TV 예능 프로그램이 정상화됐고 ‘개그콘서트’ 시청률도 15%대로 세월호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집에선 예전처럼 웃을 수 있게 됐지만 드러내서 즐기는 문화생활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모양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6월까지 영화 관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0만 명 이상 줄었다. 공연계는 더 열악하다. 록 페스티벌의 계절이 무색하게 예매율이 저조해 “작년의 반 토막”이라는 하소연도 들린다. 정부는 세월호 여파로 피해를 본 공연예술계 지원사업 방안을 내놨다.

내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00일이 된다. 동아일보 특별기획 ‘세월호 100일-잊지 않겠습니다’를 읽다가 다시 울컥했다. 세월호의 상처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우리 사회의 ‘네버엔딩 스토리’다.

콘서트 말미, 짧은 영상이 상영됐다. 아프리카 차드의 아이들이었다. 이승철은 “콘서트 수익금의 일부는 차드의 마을 학교를 짓는 데 쓰인다”고 했다(나중에 들으니 매년 2억 원을 내고 있다고 한다). 3호 학교까지 만들어졌고, 첫 졸업생도 배출했다.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 아이들을 배경으로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가 흘렀다. 옆자리에선 훌쩍임이 들렸다. 마음이 조금은 가볍고 따뜻해졌다.

의도한 감동이었는지는 몰라도, 이런 나눔의 순간은 좋은 아이디어 같다. 위축된 사회 분위기 때문에 힘들다고만 하지 말고 문화계가 수익 나눔처럼 관객 마음의 부담을 덜어줄 방법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민생 경제니 하는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일에 치이고 일상에 지친 우리에겐 유쾌한 콘서트와 신나는 록 페스티벌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강수진 문화부장 sjkang@donga.com
#이승철#콘서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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