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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만난 사람]시각장애인에 사진 가르치는 조세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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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만난 사람]시각장애인에 사진 가르치는 조세현 작가

이승건기자 입력 2014-07-19 03:00수정 2014-07-1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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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에서 빛을 찾는 작업… 가슴으로 찍어보세요”
조세현 작가(오른쪽)가 한빛맹학교 중학교 3학년 여학생에게 석고상을 만져 보게 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사진 강습은 촉각과 청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 작가는 “사춘기의 청소년이라는 점을 고려해 여학생에게는 남성 석고상을, 남학생에게는 여성 석고상을 찍게 했다”며 웃었다. 조세현의 희망프레임 제공
‘단언컨대, 본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입니다.’ 지난해 히트했던 한 스마트폰의 광고 카피다. 이 광고를 만든 이는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위대한 교육자이자 사회복지사업가가 된 헬렌 켈러의 저서 ‘3일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했다. 헬렌 켈러가 보고 싶어 했던 것들은 다음과 같았다. 자신을 가르쳐준 앤 설리번 선생님의 얼굴, 산과 들의 아름다운 꽃과 빛나는 노을, 먼동이 트는 모습과 밤하늘에 빛나는 별,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의 표정…. 만약 헬렌 켈러의 소원이 이뤄졌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했을까. 아마 자신의 눈으로 보고 싶었던 것을 사진으로 찍어 영원히 남기고 싶어 하지는 않았을까.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사진을 찍는다? 좀처럼 상상하기 쉽지 않은 장면이다. 사진작가 조세현 씨(56)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찍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진을 제대로 가르쳐 보겠다고 마음먹고 실천에 옮겼다. 그 현장을 찾았다.

조명만큼 뜨거웠던 배움의 열기

“석고상을 천천히 만져 보세요. 눈과 코가 있죠? 옆으로 손을 옮겨 보세요. 귀가 잡히나요? (잠시 후) 자, 이제 뒤를 쓰다듬어 보세요. 어때요 뒤통수가 예쁘죠? 그래도 뒤는 찍으면 안 돼요. 누군지 알아 볼 수 없으니까요(학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진다). 이렇게 (학생의 손을 잡아 옮겨주며) 정면에서 약간 옆으로 돌린 부분을 찍어야 사진이 멋지게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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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말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한빛맹학교의 한 교실. 이곳에 다니는 중학교 3학년 전원이 카메라를 손에 들고 조 작가의 강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전원이라고 해봤자 남학생 3명, 여학생 5명 등 8명이 전부다.

이 수업은 사단법인 ‘조세현의 희망프레임’이 추진하고 있는 ‘그린프레임’의 일환이다. 그린프레임은 삼성그룹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 아래 조 작가가 운영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사진을 통해 청소년들이 꿈과 재능을 찾고 세상과 소통하며 자신을 표현하도록 돕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으로 보육원, 다문화가정 등 소외계층 청소년이 주요 대상이다. 2012년 시작해 수료 학생이 500명을 훌쩍 넘었지만 시각장애 청소년들이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이날이 첫 수업이었다.

수업 시작 직후 분위기는 산만했다. 조 작가는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 준비한 말을 꺼냈다.

“이런 말 처음 들어봤겠지만 사진작가와 시각장애인은 똑같아요.”

딴짓을 하던 학생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지금은 디지털카메라가 나와 프린터로 사진을 뽑지만 내가 처음 사진을 배울 때는 깜깜한 암실에서 작업을 했어요.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툭하면 부딪히고 넘어지고…. 몸에 아주 나쁜 약품이 묻어 큰일 날 뻔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4년을 공부하다 보니 너무 익숙해졌어요. 선생님 별명이 그래서 ‘밤의 황제’예요(웃음). 여러분도 어둠이 익숙하죠? 그래서 선생님과 여러분은 다르지 않아요.”

‘시각장애인에게 어떻게 사진을 가르칠까’라는 궁금증은 수업을 지켜보며 해소됐다. 귀로 듣고, 말로 대답하고, 손으로 만지면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카메라와 친숙해졌다.

수업은 카메라를 만지는 것부터 시작됐다. 렌즈를 분리한 뒤 안쪽까지 손가락을 넣어보며 구조를 익혔다. 이어 셔터를 눌러보게 했다. 속도를 조절해 2분의 1초, 8분의 1초, 15분의 1초의 차이를 귀로 구분하게 했다. “사람은 아래위로 길어요? 옆으로 넓어요?” “아래위로요!” “그러니까 사람을 찍을 때는 사진기를 세로로 들어야 돼요.”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자, 모두 일어나세요.”

이제 실제로 사진을 찍을 차례다. 조 작가가 서 있는 학생들의 어깨를 슬쩍 밀자 모두 휘청거린다. 다리를 조금 벌리게 한 뒤 다시 어깨를 민다. 움직임이 확연히 줄었다.

“다리를 벌려야 흔들리지 않게 찍을 수 있어요. 이제 카메라를 가슴에 꼭 붙이세요. 가슴에 붙이면 웨이스트 레벨, 눈에 붙이면 아이 레벨인데 여러분은 웨이스트 레벨이 편할 거예요. 석고상을 카메라 높이에 맞춰요. 자, 여러분은 가슴으로 사진을 찍는 겁니다.”

시각장애인의 가이드 ‘포토스카우트’

조 씨는 소위 ‘잘나가는’ 작가다. 정치, 경제, 종교, 문화, 연예, 스포츠 분야를 망라해 수많은 유명인사의 사진을 찍었다. 법대를 가라는 부모의 바람 대신 중앙대에서 사진을 전공한 그가 카메라를 들고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은 ‘주부생활’이라는 잡지사였다.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그는 피사체인 인물 속에서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데 남다른 재능을 발휘했고 이게 바탕이 돼 전업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돈 잘 버는 ‘상업 작가’로 정점을 찍은 그의 이름 앞에 2000년부터 또 하나의 수식어가 붙었다. ‘재능 기부 작가’가 그것이다. ‘잘나가는’ 사람들을 찍어왔던 그는 다문화가족, 노숙인, 입양아 등 사회소외계층으로 대상을 넓혔다. 2006년부터는 장애인스포츠로도 눈길을 돌렸고 현재 대한장애인체육회 홍보위원장이기도 하다.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 2012년 런던 패럴림픽, 2014년 소치 패럴림픽 등을 현장에서 지켜본 그는 ‘가이드’의 존재를 눈여겨봤다. 가이드는 손을 서로 묶거나(육상), 마이크와 이어폰을 이용해(스키) 시각장애인에게 길을 알려준다. 조 작가는 시각장애인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일종의 가이드인 ‘포토스카우트’를 붙여줬다. 시각장애인이 이들과 함께 사진 공부를 하면 사물에 대한 이해와 자기만의 사진 이미지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카메라에서 렌즈를 분리하는 것부터 석고상을 만질 때도, 사진을 직접 찍기 위해 교실 밖으로 나갈 때도 학생들 옆에는 항상 포토스카우트가 있었다. 포토스카우트는 사진작가 또는 사진에 관심이 많은 자원봉사자 등으로 구성됐다.

경남 진주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김기종 씨(34)도 그중 한 명이다. 김 씨는 이날 새벽 버스를 타고 서울로 왔다가 조 작가의 강의가 끝난 뒤 다시 버스를 타고 진주로 내려갔다. 가게를 챙기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전 프로젝트에 참가했을 때는 4일 연속 진주와 서울을 오간 적도 있다고 했다. 왜 돈도 안 되는데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묻자 김 씨는 이렇게 말했다. “조 작가님의 활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배울 점이 많을 것 같았죠. 봉사라기보다는 내가 재미있어서 하는 겁니다. 시각장애인에게 사진을 가르치는 것은 처음이라 너무 막막했는데 좋은 경험이었어요. 사전 교육 때 조 작가님이 ‘여러분이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못 맞추면 중도에 그만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어요. 그만큼 아이들이 중요하다는 얘기였죠. 오늘도 즐겁게 많이 배우고 갑니다.”

기본적인 이론 수업을 마친 학생들은 포토스카우트들과 함께 밖에 나가 직접 사진을 찍었다. 포토스카우트의 얼굴을 찍은 학생이 가장 많았고 지나가는 어린아이를 찍은 학생도 있었다. 찍은 사진은 고성능 프린터를 통해 출력됐다. 처음으로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며 학생들은 신기해했다. 시각장애인이라도 완전한 실명이 아니라면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출력된 사진을 눈앞에 바짝 대면 자신의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이날 수업에 참석한 학생들 대부분도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본 경험은 있었다.

Impossible에 점 하나만 찍으면…

‘조세현의 그린프레임’ 초급반 과정에 참가한 한빛맹학교 학생들이 자신이 찍어 출력한 사진을 든 채 웃고 있다. 사진 속 학생과 같이 있는 인물이 사진 도우미인 ‘포토스카우트’다.
첫 수업을 하고 나서 한 주 뒤. 조 작가와 학생들은 같은 장소에서 만났다. 2주째의 주제는 정물 사진 촬영. 학생들은 각자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을 갖고 왔다. 신발, 운동선수의 유니폼, 인형, 지갑…. 그 물건을 활용해 여러 장의 사진을 찍고 출력하고 평가받는 작업이 이어졌다. 첫 수업보다 훨씬 진지한 분위기였다. 다시 한 주 뒤. 학생들은 다시 교실 밖으로 나갔다. 인공조명이 아닌 자연광 아래에서 꽃과 나무를 찍었다. 서로 모델이 돼 친구의 얼굴을 렌즈에 담았다. 자신의 모습을 촬영했다. 교실로 돌아와 잔뜩 기대를 한 채 사진을 출력했고 포토스카우트, 친구들과 사진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자신의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밖으로 나가 촬영을 했다. 조 작가는 그런 학생들을 ‘리틀 포토그래퍼’라고 불렀다.

3주에 걸쳐 진행된 초급반 과정은 이날로 끝났다. 손에 닿는 조각상부터 시작한 촬영 대상은 점차 먼 곳으로 바뀌었다. 날씨와 풍광이 좋은 10월쯤에는 본격적인 실사를 나갈 계획이다. 올림픽공원이나 한강 또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등이 후보지다. 조 작가는 “일단 조형물이 많은 곳이 좋다. 서대문형무소의 경우 창살 같은 게 좋은 주제다. 사진을 찍으며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얘기하는 또 다른 교육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첫 초급반 과정을 마친 조 작가는 자신의 교수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사진 도사’인 그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외국 방송을 통해 시각장애인 일본 여성의 말을 들었다. 그는 ‘자주 부딪힐 텐데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부딪히지 않는 게 더 불편하다. 아무것도 없으면 길을 찾을 수 없다. 부딪혀야 안심이 된다’고 말하더라. 생각이 너무 달랐다. 시각장애인의 그런 생각에 맞춰 부딪힐 수 있는 모든 것을 찍도록 해야 할 것 같다.”

3월에 있었던 러시아 소치 패럴림픽 폐막식에서는 Impossible(불가능한)이라는 거대한 조형물 단어가 I'm possible(나는 가능하다)로 바뀌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점 하나 찍었을 뿐인데 전혀 다른 의미가 됐다. 3주에 걸친 초급반 교육 후 설문조사에서 학생 8명은 모두 “사진을 더 배우고 싶다”고 했다. 이제 그들은 약간의 도움만 있다면 소중한 사람의 얼굴, 아름다운 꽃과 빛나는 노을,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자신만의 사진으로 남길 수 있게 됐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Impossible#I'm possible#조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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