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원 살인청부 혐의]“5억 안갚으면 출마 막을거래”… 흉기 건네며 살해 독촉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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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에 찍힌 용의자… 中도주 110일 만에 국내 압송 3월 3일 0시경 검은 옷과 모자로 온몸을 가린 팽모 씨가 팔짱을 낀 채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의 빌딩에 올라가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잡혔다. 바로 숨진 재력가 송모 씨의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위쪽 사진). 송 씨를 살해한 뒤 중국으로 도주했다가 지난달 중국 선양에서 검거된 팽 씨는 24일 한국으로 신병이 인도돼 경찰에 체포됐다(아래쪽 사진). 서울 강서경찰서 제공
CCTV에 찍힌 용의자… 中도주 110일 만에 국내 압송 3월 3일 0시경 검은 옷과 모자로 온몸을 가린 팽모 씨가 팔짱을 낀 채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의 빌딩에 올라가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잡혔다. 바로 숨진 재력가 송모 씨의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위쪽 사진). 송 씨를 살해한 뒤 중국으로 도주했다가 지난달 중국 선양에서 검거된 팽 씨는 24일 한국으로 신병이 인도돼 경찰에 체포됐다(아래쪽 사진). 서울 강서경찰서 제공
“내가 빌려준 7000만 원 안 갚아도 되니까…사람 한 명만 죽여줄 수 있을까?”

2012년 12월 경기 부천의 한 식당. 10년 지기 친구인 김형식 서울시의회 의원과 식사를 하던 팽모 씨(44)는 귀를 의심했다. 김 의원은 “송 회장(송모 씨)에게 돈을 5억 원 정도 빌렸는데, 자꾸 갚으라는 압박이 커 괴롭다”고 친구에게 호소했다. 팽 씨는 “알았다”고 했다.

‘서울 강서 재력가 살인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팽 씨는 2007년 김 의원에게 사업자금으로 7000만 원을 빌렸지만 다음 해 부도가 났고 중국을 오가며 보따리 장사를 하던 차였다.

○ “왜 안 죽이느냐”

이후 김 의원은 계속 “(살인) 왜 안 해?”라고 팽 씨에게 범행을 독촉했고 그때마다 팽 씨는 주거지인 인천에서 송 씨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까지 와서 주변 지리를 살펴보고 갔다. 팽 씨는 그 횟수가 50∼60차례라고 진술했다. 이후 김 의원은 팽 씨에게 용돈 명목으로 1300여만 원을 건넸고 1월엔 범행에 쓰라며 손도끼와 전기충격기도 줬다.

송 씨의 동선과 살인에 적합한 시간을 알려준 것도 김 의원이었다. 송 씨와 자주 만났던 김 의원은 송 씨의 동선을 파악한 뒤 팽 씨에게 “자정부터 오전 2시 사이에 범행을 하라”며 폐쇄회로(CC)TV가 설치된 곳 등 구체적인 사항들을 알려줬다. 김 의원은 2월 말 팽 씨에게 “송 씨가 ‘돈을 갚지 않으면 재선(6·4지방선거)에 못 나가게 하겠다’고 협박한다”며 “이번이 마지막이다. 꼭 실행하라”고 독촉했다고 한다. 범행 전날 김 의원은 서울의 한 식당에서 송 씨를 만나기로 약속한 뒤 옆방에 팽 씨를 불러 송 씨의 얼굴을 확인시켰다.

3월 3일 0시 무렵. 팽 씨는 검은 옷에 검은 모자를 눌러 쓰고 송 씨 사무실에 들어서 송 씨를 덮쳤다. 평소 운동을 많이 하던 송 씨라 손도끼를 빼앗을 정도로 강하게 저항했지만 전기충격기에 쓰러졌고, 팽 씨는 송 씨를 수십 차례 내리쳐 살해했다. 이후엔 올 때와 마찬가지로 CCTV들을 피해 좁은 골목 사이로 빠져나갔고 이후 4차례 택시를 갈아타며 인천으로 달아났다. 인천의 한 사우나에선 미리 맡겨놓은 옷으로 갈아입고 나가기도 했다. 피 묻은 옷과 전기충격기 등 증거물은 인천 연수구의 청량산에서 불태웠다.

○ “잡힐 경우 자살하라”

증거가 거의 없었지만 강서경찰서는 끈질기게 살인 용의자를 추적했다. 길거리와 가게 앞의 CCTV에서 팽 씨가 찍힌 영상을 확보한 뒤 팽 씨가 단골로 다니던 사우나도 알아냈다. 그러나 팽 씨는 이미 중국으로 출국한 상태였고 경찰은 3월 중순 인터폴 적색 수배를 내렸다.

지난달 22일 중국 선양(瀋陽)에서 중국 공안에 팽 씨가 체포됐고 한 달 정도 지나 24일 한국에 신병이 인도됐다. 경찰은 팽 씨에게서 “김 의원에게서 사주를 받았다”는 진술을 듣고 김 의원을 24일 체포했다. 팽 씨의 통화기록 등을 조사하면서 김 의원이 연루돼 있다는 걸 파악한 뒤였다.

팽 씨는 김 의원이 범행 전 자신에게 “만약 잡히면 ‘김 의원에게 갚을 돈이 있는데 송 씨가 김 의원을 경제적으로 압박해 나에게 돈을 갚으란 압박이 올까 봐 죽였다’고 진술하고, 여의치 않으면 자살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만약 자살을 하게 되면 팽 씨의 아내와 자식은 김 의원이 돌보겠다고 했다. 중국 공안에 체포된 뒤 “잡혔다”고 김 의원에게 전화했을 때도 돌아온 답은 “목숨을 끊으라”는 것이었다고 했다. 실제 팽 씨는 중국 구치소에서 운동화 끈으로 목을 매는 등 대여섯 차례 자살을 기도해 중국 공안이 결박을 해놔야 했다. 경찰은 “팽 씨가 체포된 이후에도 김 의원이 ‘죽으라’고 하자 서운함을 느낀 것 같다”며 범행 진술 동기를 설명했다.

○ 김 의원 “살해 지시 안 했다” 부인

체포된 김 의원은 살인 교사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팽 씨와 수차례 통화한 사실과 범행 후 이틀 뒤 팽 씨를 인천공항 인근까지 태워준 사실은 인정하지만 “친해서 통화했고, 돈을 갚기 위해 중국에 가서 돈을 벌어온다 해서 태워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직접 건네줬다는 전기충격기도 “호신용으로 차에 넣고 다녔는데 없어졌다”고 했다.

피해자 송 씨에게 돈을 빌린 사실도 부인했다. 처음엔 차용증도 써준 적이 없다고 했지만 경찰이 김 의원의 지장이 찍힌 5억2000만 원의 차용증을 내밀자 말이 달라졌다. 김 의원은 “술집에서 송 씨가 ‘쓸 데가 있다’며 부탁해 찍어줬을 뿐 채무는 일절 없다”고 진술을 바꿨다. 그러나 경찰은 김 의원이 범행 전후 새벽 시간대에 공중전화와 대포폰으로 수십 차례 통화하고, 김 의원이 팽 씨 지인 계좌에 250만 원을 보낸 데 이어 팽 씨가 중국으로 출국하기 직전 도피자금 조로 300만 원을 건넨 점 등을 바탕으로 추가 범행이나 공범 유무를 계속 수사하고 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서울시의원 살인청부#강서구 재력가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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