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엔 ‘TV셀러’, 하반기엔 ‘스크린셀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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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가, 개봉영화 원작소설 강세 전망

27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문고 소설 코너.

“그… 제목이 좀 길어서 헛갈리는데, ‘100세 노인’인가 하는 책 있나요?”

회사원 이경희 씨(33·여)는 이날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구매했다. 이 씨는 “영화를 보고 원작이 궁금했다”고 말했다. ‘100세 노인’은 갱단의 돈 가방을 가지게 된 노인을 다룬 스웨덴 소설로, 지난해 7월 출판됐다. 당시에는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오르지 못했지만 동명 영화가 18일 개봉된 뒤 2주 만에 교보문고 등 대형서점 종합베스트셀러 순위 3위까지 급상승했다.

○ 상반기 TV셀러→하반기는 스크린셀러?

올 상반기 베스트셀러 순위는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나온 소설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TV CF와 연계한 여행서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등 ‘TV셀러’가 휩쓸었다. 하반기에는 영화의 원작소설, 즉 ‘스크린셀러’가 대세가 될 것이라고 출판계는 예측하고 있다.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원작소설 ‘All You Need Is Kill’은 4일 영화 개봉 후 판매량이 2배가량 늘었다. 한국 영화 기대작 여러 편도 원작이 소설이다. 9월 개봉할 강동원 송혜교 주연의 ‘두근두근 내 인생’은 소설가 김애란의 동명 소설(2011년)이 원작이다. 올 초 베스트셀러 순위에 없었지만 영화 개봉 소식이 알려진 후 6월 말 현재 교보문고 소설 베스트셀러 순위 15위에 올라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화장’도 김훈 작가의 2004년 작품. 올해 말 개봉 예정인 ‘내 심장을 쏴라’는 정유정의 동명소설(2009년)을 영상화했다. 출판사 은행나무의 주연선 대표는 “‘내 심장을 쏴라’는 지금까지 15만 부가 팔렸는데 영화로 나오면 판매량이 다시 증가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책들은 신간(新刊)이 아니라 팔린 만큼 팔린 구간(舊刊)이다. 영화 개봉과 함께 책이 ‘제2의 전성기’를 누리면 출판사 이득이 극대화된다. 영화화가 결정되면 출판사들은 ‘책의 변신’을 시도한다. 소설 ‘방황하는 칼날’(2008년)은 올 4월 영화가 개봉되자 표지에 영화장면을 삽입했다. 2009년 발표된 소설 ‘우아한 거짓말’도 올해 김희애 주연 영화 개봉에 맞춰 양장본으로 재출판됐다.

○ 미디어 의존 심화, 자성의 목소리도

원작소설은 영화 개봉 일주일 전후에 평소보다 2∼3배 더 팔린다. 이후 영화가 흥행할수록 판매량은 늘어난다. 소설 ‘도가니’(2009년)는 영화가 나오기 전에 35만 부가 팔렸지만 2년 후 영화 개봉에 힘입어 50만 부가 더 나갔다. ‘소설→영화’가 ‘로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작가들도 추가 수입이 짭짤하다. 보통 영화 원작료는 신인작가 2000만 원, 중견작가 5000만 원, 베스트셀러 작가 1억 원 수준이다.

하지만 영화가 흥행이 되지 않으면 원작도 베스트셀러가 되긴 어렵다. 영화 ‘역린’은 흥행에 실패하면서 동명소설도 기대 이하의 판매 실적을 올렸다. 영화 흥행이 원작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염현숙 문학동네 편집국장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영화 개봉 전에는 소설이 잘 팔렸는데 비주얼이 화려한 패션계를 시각적으로 잘 표현해 원작 판매가 뚝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완성도가 뛰어나면 굳이 원작을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대중이 영상 콘텐츠를 선호하면서 책이 그 파생 상품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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