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현 기자의 여기는 브라질] 스파링·컨디션 조절 실패…전술마저도 취약했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6월 30일 06시 40분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2014브라질월드컵에서 1무2패라는 기대이하의 성적표를 받아든 채 귀국길에 올랐다. 대표선수들이 27일(한국시간) 아레나 데 상파울루에서 벌어진 벨기에와의 H조 3차전에서 패한 직후 눈물과 탄식을 쏟아내고 있다. 상파울루(브라질)|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yohan@donga.com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2014브라질월드컵에서 1무2패라는 기대이하의 성적표를 받아든 채 귀국길에 올랐다. 대표선수들이 27일(한국시간) 아레나 데 상파울루에서 벌어진 벨기에와의 H조 3차전에서 패한 직후 눈물과 탄식을 쏟아내고 있다. 상파울루(브라질)|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yohan@donga.com
■ 홍명보호의 예고된 몰락…왜?

평가전 상대 잘못 골라 대회 전부터 ‘우울 모드’
선수들 몸놀림 최악…체력 등 컨디션 관리 허술
러시아·알제리 등 분석 실패…위기대응도 못해

축구국가대표팀 ‘홍명보호’가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홍명보호는 2014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에서 1무2패(승점 1), H조 최하위로 16강 탈락의 쓴잔을 들었다. 예상치 못한 졸전이었다. 러시아와의 1차전(쿠이아바)에서 1-1로 비기며 희망을 부풀렸지만, 알제리와의 2차전(포르투 알레그리)에서 2-4로 완패하며 사실상 조별리그 통과가 어려워졌다. 27일(한국시간) 아레나 데 상파울루에선 10명이 뛴 벨기에에 0-1로 무너졌다. 한국축구가 최근의 월드컵에서 1승도 없이 패퇴하기는 1998년 프랑스대회 이후 16년 만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 준비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홍명보 감독이 과거 각급 연령별 대표팀을 맡을 때부터 동고동락해온 선수들 중 상당수를 이번 월드컵 최종엔트리에 선발하면서 ‘의리 논란’을 촉발시킨 데 이어 본선 무대에서 드러난 태극전사들의 몸 상태와 경기력은 역대 최악에 가까웠고, 기복마저 심했다. 여기에 벤치의 허술했던 대응도 큰 아쉬움을 남겼다. 열정과 패기만으로는 월드컵에 나설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 있었던 대회였다.

● 허술한 준비

브라질 현장에서 만난 한 유력 축구인은 “평가전부터 잘못됐다. 매치업 상대가 대단한 강호도 아니었고, 꼭 필요한 ‘맞춤형’ 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과정도 아니었다. 경기수도 부족했고, 일련의 평가전들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상황을 훨씬 많이 안겨줬다”고 꼬집었다.

홍명보호는 월드컵 출정식을 겸해 5월 28일 국내에서 튀니지, 6월 10일 전지훈련지인 미국 마이애미에서 가나와 평가전을 치렀다. 결과는 2전 전패. 자신감은 떨어졌고, 핵심 중앙수비수 홍정호(아우스크부르크)는 발등을 다쳤다. 튀니지야 북아프리카의 알제리를 겨냥한 상대였다고 해도, 가나는 이도저도 아니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유럽팀에 대한 적응력을 높여준 것은 고사하고, 스코어와 내용에서 대패하는 바람에 우울한 분위기만 가중시켰다.

대한축구협회에는 ‘플랜B’가 없었다. 특정 에이전트가 주관한 평가전 섭외는 결국 화를 불러일으켰다. 당초 계획했던 우크라이나와의 평가전이 무산된 뒤, 이를 대체할 만한 적당한 카드를 찾지 못했다. 억지로 잡은 상대가 가나였고, 결과적으로 전혀 불필요했음이 드러났다. 당시 홍 감독은 “러시아를 보니 전형적인 동유럽 축구를 하지 않더라. 가나도 분명 좋은 상대다”며 자위했지만, 제대로 된 스파링 파트너를 구하지 못한 대표팀은 본선 준비에 큰 차질을 빚게 됐다. 유럽은 물론 일본에서도 국제축구연맹(FIFA)의 A매치 데이 스케줄이 나오면 최소 1년, 길게는 2년 너머를 내다보며 평가전 스케줄을 잡지만 대한축구협회는 치밀하지 못했다.

● 선수들은 뛰지 않았다?

브라질에서 태극전사들의 몸놀림은 기대이하였다. 또 다른 축구인은 “선수들이 제대로 뛰지 않았다”고 촌평했다. ‘태업’ 의혹을 제기한 게 아니다. 또 선수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으려던 것도 아니다. ‘엉망진창의 컨디션이 참담한 실패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그는 “뛰기 싫어서가 아니라 뛸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들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홍명보호의 체력관리는 일본인 이케다 세이고 피지컬 코치가 담당했다. 하루 2시간 정도의 짧은 훈련 도중 대표팀은 항상 30분 가량을 요가, 코어 트레이닝(상체강화훈련), 스트레칭 등에 할애했다. 마이애미에서도, 브라질에서도 똑같았다. 그런데 결국 실패했다. 격렬한 실전 후 2∼3일 만에 완벽한 몸을 다시 만들어낸 2년 전 런던올림픽과는 판이했다. 여기에 홍정호 외에도 부상자가 속출했다. 알제리전을 앞두고 발목을 다친 하대성(베이징 궈안)은 줄곧 러닝만 했다. 홍명보 감독은 “예전부터 갖고 있던 부상”이라고 설명했지만, 정말 그랬다면 더욱 심각한 일이다. ‘잠재적 부상 선수’를 월드컵이란 큰 무대에 데려갔기 때문이다.

● 부족한 전략

홍명보 감독은 2009년 이집트 U-20(20세 이하) 월드컵 때부터 다채로운 전술을 보여주지 않았다. U-20 대표팀부터 올림픽대표팀을 거쳐 성인대표팀에 이르기까지 4-2-3-1 포메이션을 고수한 데다 선수 구성마저 한결같다 보니 상대가 홍명보호를 분석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알제리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은 “한국을 오래 전부터 살펴왔고,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홍 감독은 상대국 분석에 대한 물음이 나올 때면 “러시아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렇다고 러시아전 필승전략을 마련해놓은 것도 아니었다. 상대국 분석을 맡았던 네덜란드인 안톤 두 샤트니에 코치도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않았다. 더욱이 벤치의 판단도 상당히 늦었다. 불리한 상황이 이어질 때면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하지만, 늘 타이밍이 늦었다.

단골 득점 루트인 세트피스도 활용하지 못했다. 유난히 잦았던 비공개훈련 때마다 여러 가지 세트피스 상황을 준비했다는데, 결과는 몹시도 초라했다. 브라질 현지의 한 축구 전문가는 “우리 세트피스를 볼 때면 대체 뭘 의미하는지, 어떤 걸 의도하는지 모르겠더라. 수비수가 7∼8m 달려 들어가며 강하게 부딪히는 장면도 없고, 고작 문전 앞에서 공이 다가와야 움직이니 상대에게 전혀 위협적이지 못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4년 전 남아공월드컵 때 한국은 전체 6골 가운데 4골을 세트피스 상황에서 얻었지만, 브라질월드컵에선 무득점에 그쳤다.

상파울루(브라질)|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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