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청문절차 필요한 자리 6000여개… 마리화나 전력으로 낙마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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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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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사청문회는

17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답변을 준비하고 있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오른쪽). 동아일보DB
17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답변을 준비하고 있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오른쪽). 동아일보DB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인 1993년 1월 조 베어드 코네티컷 주 변호사를 연방 법무장관에 지명했다. 상원 인준 청문회만 통과한다면 베어드는 미국 사상 첫 여성 법무장관이 될 터였다. 대선 과정에서 자신이 입각할 것임을 눈치 챈 베어드는 1990년부터 2년 동안 자신이 운전사와 유모로 고용했던 과테말라 출신 부부를 해고했다. 이들이 불법 체류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어드는 법무장관 지명 직후 이 사실을 자신의 친구이자 클린턴 행정부 첫 국무장관인 워런 크리스토퍼에게 말했다. 클린턴 캠프도 사실을 인지했지만 아무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한 참모는 “누구나 하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여론은 동의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베어드가 불법 체류자를 고용해 세금을 포탈했다고 대서특필했다. 유권자들은 상원의원들에게 ‘낙마시키라’는 전화를 계속 걸었다. 결국 베어드는 청문회 도중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고위 공직자들도 대통령의 지명 뒤 여론의 검증과 상원의 청문 절차를 거친다. 인준 청문회의 법적 근거는 ‘대통령은 임명하고 상원은 인준한다’는 헌법 제2조 제2절 2항에 있다. 대통령의 공직자 인선에 조언과 동의(advice and consent)를 해야 하는 상원의 책임을 명시한 것이다.

미국 행정부와 사법부에서 청문 절차를 밟아야 하는 자리는 6000개가 넘는다.

모든 대상자들이 엄격한 청문 절차를 거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형식적인 절차를 거쳐 인준된다. 하지만 장관을 비롯한 차관보급 이상의 연방 행정부 고위직, 연방 대법관과 검사, 연방수사국(FBI) 국장, 군 고위 장성, 대사 등 600여 명은 철저한 검증을 거친다.

인준 대상자의 업무를 감시하는 상원 상임위원회는 별도의 조사팀을 가동하고 대상자에게 장문의 서면 자료를 요청한다. 언론도 특별취재팀을 가동해 이들의 문제점을 끈질기게 찾아낸다.

한국에서는 총리와 장관 등 행정부 권력기관장들이 청문회의 꽃이지만 미국에서는 사법부, 그중에서도 연방 대법원장과 대법관 인준에 가장 큰 관심이 쏠린다. 이들은 종신직이어서 한 번 인준을 통과하면 본인이 사직하거나 사망하기 전까지 자리를 유지하면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들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원의원들은 대법관들의 정치적 법적 성향은 물론이고 개인적인 철학의 문제까지 검증의 칼을 들이댄다.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중도 성향의 루이스 파월 대법관의 후임으로 보수적인 로버트 보크 교수를 지명했다. 상원에서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진보 진영은 보크 인준 이후 연방 대법원이 보수 성향으로 기울 것을 우려한 나머지 그의 보수적인 판결과 언행을 집중 공격했다. 결국 상원은 42 대 58로 인준을 부결시켰다. 후임으로 지명된 더글러스 긴즈버그 역시 마리화나를 피운 전력이 드러나 청문회가 열리기 전 사퇴했다.

1991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연방 판사 재직 시절 법률보좌관이던 애니타 힐이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곤욕을 치러야 했다. 흑인인 그는 청문회에서 이를 강력하게 부인했고 결국 상원의 인준을 받아냈다. 하지만 힐이 청문회에 직접 나와 자신의 성희롱 피해를 주장하고 언론이 대서특필하면서 낙마 직전까지 몰렸다.

물론 미국의 상원 인준 청문회 제도도 허점이 노출됐다. 상원의원들이 다른 정치적 목적으로 인준권을 활용하기도 했다.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네 명의 재무부 고위 당국자들의 인준을 지연시킨 제시 헬름스 상원의원(공화·노스캐롤라이나)은 지역구 섬유산업을 보호하도록 아프리카 등과의 자유무역협정을 개정하고 자신이 미는 사람을 섬유 무역 협상 담당으로 임명해 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들이대는 일이 벌어졌다.

인준 대상이 많다 보니 물리적으로 시간이 길어지는 점도 문제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이달 17일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를 거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가 언제 본회를 거쳐 최종 인준될지에 대해 “알 수 없다. 지명된 뒤 1년이 넘도록 인준을 받지 못하는 대사가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대통령들은 상원의 엄격한 인준 기준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1년 제임스 케이슨을 농무부 부차관보에 임명했다. 케이슨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농무장관에 앉히려다 상원의 인준 반대를 우려해 포기한 인물. 아들 부시 대통령은 상원 인준 대상이 아닌 부차관보 자리에 임명해 청문 절차를 피했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빌 클링턴#청문회#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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