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오싹하고 음울하며 기상천외한 ‘21개의 우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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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아이를 죽이고 싶었던 여자가 살았네/류드밀라 페트루솁스카야 지음/이경아 옮김/304쪽·1만2000원·시공사

이웃 여자가 임신을 하자 라야는 병이 날 정도로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라야는 이웃의 어린 딸을 죽이고 싶다. 공용 복도와 거실에 바늘통을 떨어뜨리거나 뜨거운 물이 든 양동이를 슬그머니 놓아둔다.

이웃 여자가 외출한 사이, 옆방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라야는 독성물질인 가성소다를 푼 물을 아기가 있는 방문 바닥 틈으로 끼얹고는 모른 척했다. 아기는 사라졌고, 이웃 여자는 넋이 나간 것 같았다. 라야는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않았다. 라야의 잔인한 계획은 성공한 것일까. 어느 날 아침 서서히 죽어가는 라야 앞에서 이웃 여자는 선언한다. “우리는 비긴 거야.”

표제작에 해당하는 ‘복수’의 내용이다. 여섯 쪽이라는 짧은 분량 안에 뚜렷한 기승전결과 예상치 못한 비밀이 탄탄하게 맞물려 있다. ‘이야기의 마녀’라 불리는 러시아 작가 페트루…스카야(76)의 짧은 이야기 21편은 음울하고 기괴하며 신비롭다. 유머와 반전이 있다.

등장인물은 삶의 무게를 짊어진 채 사는 평범한 이들이다. 분홍색 대머리 남자가 전한 전염병 소식에 가족들은 각자의 방에 갇혀 죽어가고(‘위생’), 외동딸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아버지는 죽은 딸을 살리기 위해 꿈속에서 펄떡이는 심장이 든 샌드위치를 먹는다(‘분수가 있는 집’). 양배추에서 주운 손톱만 한 아이를 정성껏 키우고(‘양배추 엄마’), 아름다운 쌍둥이 자매는 마법사의 저주로 세상에서 가장 뚱뚱한 아가씨로 합쳐진다(‘마릴레나의 비밀’).

러시아보다 영미권에서 먼저 단행본으로 출간됐다(2009년 펭귄북스). 뉴욕타임스는 ‘번뇌를 만들어내는 나약한 인간 본성과 운명이 빚은 사건들을 놀랍도록 적은 단어만으로 마법처럼 버무려냈다’고 평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이웃의 아이를 죽이고 싶었던 여자가 살았네#임신#질투#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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