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60일 만에 ‘도로 정홍원 총리’ 갈 길 멀고 험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7일 03시 00분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사태를 책임지고 두 달 전 사의를 표명한 정홍원 총리의 사표를 어제 반려했다. 사실상 문책성으로 경질됐던 총리가 60일 만에 복귀한 것은 헌정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윤두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노출된 문제들로 인해 국정 공백과 국론 분열이 매우 큰 상황을 방치할 수 없어 박 대통령이 고심 끝에 정 총리의 사의를 반려했다”고 밝혔다.

국민의 상식과는 거리가 먼 결정이다. 정 총리는 왜 사표를 냈고 대통령은 왜 그를 경질했는지부터 따져 보자.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정부의 총체적 부실대응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번지자 정 총리는 “정부를 대표해 국민께 사과한다”며 책임을 지고 사의를 밝혔다. 총리 지명 때부터 능력과 도덕성에서 과연 내각을 총괄하는 국정 2인자 자리에 합당한지 논란이 있었던 정 총리였다. 대통령도, 국민도 관료사회의 적폐를 도려내고 국정 쇄신을 하기 위해선 인적 쇄신이 절실하다는 데는 생각이 일치했다. 그때와 현재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정 총리를 유임시킨 이유가 너무 군색하다. 인사 검증 과정에서 공영방송이라는 KBS가 여론을 호도하는 보도를 내보내고 야당이 가세해 거세게 몰아붙였다고 해도 두 번의 총리 후보자 낙마에 대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국민의 눈높이가 달라진 것도 사실이지만 5000만 국민 가운데 총리감 하나 못 구한다는 것은 변명이 될 수 없다. 결국 박 대통령은 “과거와 현재의 잘못된 것들과 비정상을 바로잡겠다”던 세월호 참사 한 달 뒤의 대(對)국민 담화와 달리, 대통령 자신은 달라지지 않았고 만기친람(萬機親覽)의 국정 운영도 계속하려는 것 아닌지 의문이다.

정 총리는 유임 발표 직후 “필요한 경우 대통령께 진언하면서 국가적 과제를 완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의 재신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새 총리감을 찾을 때까지 부득이 시한이 연장된 ‘시한부 총리’라는 게 다수 국민의 시각이다. 눈치 빠른 공무원들은 벌써 이 정부 실세로 꼽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만 바라보고 있다. 무엇보다 세월호 부실대응으로 문책을 받은 정 총리가 관피아 혁파 같은 법질서 확립과 공직사회 개혁을 해낼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4개월 됐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나 민심은 레임덕에 빠진 정권 말기를 보는 듯하다. 총리 하나 뽑지 못하는 무기력 무소신 무책임의 ‘3무(無) 정권’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참극(慘劇)’을 지켜보면서 일각에서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실망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수그러들지 않았는데도 대통령은 마치 국민의 기억력을 테스트하는 듯한 인사를 단행하고 말았다. 도로 그 자리에 안착한 정 총리가 세월호 참사를 묵묵히 수습하며 깨달은 교훈을 실천해주기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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