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76>낮은 둥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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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둥지
―김예강(1961∼ )

아파트 1층 화단
베란다 밖 어린 매화나무에
새가 둥지를 틀었다
꼭 아기 밥공기만 하다

사람 손 눈치 보지 않고
둥지 내려놓고 있는 새

새집 봐요 빨래 널다 말고
식구들을 부른다
아이는 엄마, 주거침입, 사생활침해예요 한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마침 새들이 둥지에 없어서 다행이다
없는 어린 새 깃털을 어루만지기라도 하듯 노모는
하던 일 계속하다 말고 쯔쯧 혀만 차신다

어디 둥지 틀 데 없어서
얼마나 급해서면 그 어린 게,
그 어린 게 쯔쯧쯔쯧

세상 물정 아랑곳없이 덜컹
살림 차린 어린 연인
빈 둥지조차 따뜻한데


때는 새들도 둥지를 비우는 한낮, 아마 휴일일 테다. 화자는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다 말고 식구들을 부른다. “새집 봐요!” 도시에서 자기 집 화단에 새가 둥지 튼 걸 본다는 건 놀라운 사건이다. 놀라운 건 사람의 사정. 화자의 아이는 사람의 호들갑스러운 관심에 새가 불안해할까 걱정하고, 화자의 노모는 ‘어디 둥지 틀 데 없어서/얼마나 급해서면 그 어린 게’하며 혀를 차신다. 사려 깊고 따뜻한 사람들이다.

너무 어려서 세상 물정 모르거나 아주 어리석지 않다면, 새도 다 생각이 있을 테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제가 살 곳을 고를 때는 안전한가, 깨끗한가, 조용한가를 살필 테다. 좋은 이웃은 필수다. 그렇게 새에게 선택된 화자네 화단과 가족이다. 이제 화자 가족은 어린 새가 커가는 모습도 볼 테고, 어미 새가 아기 새를 어르거나 꾸짖는 소리, 형제 새들이 다투는 소리도 들을 테지. 새들이 즐거이 우짖는 소리에 잠이 깰 테지. 아파트라면 1층이나 2층에 살아야 누리는 축복이다. 화자 가족도 새 가족도 그렇게 오래 평화롭기를!

대도시에 살면 동물이나 식물이나 자연이 귀한 손님처럼 반가운데, 자연의 기가 승한 고장에서는 이기거나 물리쳐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기 쉬운가 보다. 그래서인지 시골사람이 동물을 대하는 모습은 종종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냉혹하다. 어쩔 수 없는 입장이 있겠지만, 피터 싱어가 ‘동물해방’에서 강조했듯이, 이것만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동물도 사람처럼 고통을 느낀다는 것. 그 고통을 사람의 높은 지능과 자비심으로 최소화하자는 것.

황인숙 시인
#낮은둥지#김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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