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法 “수혈거부 환자 사망, 의사 책임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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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종교적 신념에 ‘무수혈 수술’… 피해감수 각서 쓰고 수술중 숨져
“자기결정권 존중 처벌못해” 판결

종교적 신념에 따라 수혈 받는 것을 거부한 환자가 수술 도중 과다 출혈로 사망했어도 의사에게 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26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의사 이모 씨(57)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자녀의 수혈을 거부한 부모가 유기치사죄로 처벌받은 사례는 있지만 환자 스스로 내린 수혈 거부 결정에 대한 의사의 책임 소재를 따진 건 처음이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A 씨(당시 62세·여)는 2007년 인공고관절 수술을 받으려 했다. ‘다른 사람의 피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교리에 따라 병원 3곳에 무수혈 방식 수술이 가능한지를 문의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나 의사 이 씨는 검사 결과 등을 토대로 무수혈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A 씨는 수술하기에 앞서 ‘무의식이 되더라도 수혈을 원치 않는다는 방침은 변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야기되는 피해에 대해 의료진에게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다. 하지만 수술 도중 과다출혈로 인한 폐부종으로 사망했다.

재판부는 “원칙적으로는 환자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우선한다”면서도 “특정한 치료 방법을 거부하는 게 자살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그로 인해 제3자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는다면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할 의무와 환자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충돌하는 경우 의사가 자신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어느 한 가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행동해도 이를 처벌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생명과 대등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나이, 지적능력, 가족관계, 수혈 거부 의사가 상당 기간 지속된 확고한 종교적 신념에 기초한 것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수혈거부 환자 사망#무수혈 수술#여호와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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