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착해도 되는 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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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까지 캐나다에서 살다 온 조카딸이 결국 5년 만에 다시 떠난다. 느슨하기 짝이 없는 밴쿠버에서 자랐으니 한국 학교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작년에는 성적이 많이 올랐고 학급 회장까지 맡았다고 했는데 역부족이었나 보다.

아이는 그 성적으로는 대학에 가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했고, 학교생활에서도 꽤 많은 상처를 받은 것 같다. 상당수 친구들이 왜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지, 선생님은 그걸 보시고도 왜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지, 어른들은 잘못했을 때 왜 사과를 안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 걸 따져 물으면 어른들이 왜 싫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했다.

출국을 앞두고 조카 모녀는 남대문시장으로 쇼핑을 갔다.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을 샀는데 집에 와 살펴보니 문구류를 담은 봉투가 없었다. 물건을 잘 챙기지 못해 미안하다며 쩔쩔매는 아이에게 엄마는 “대신 오늘부터 우리 집 쓰레기는 네가 갖다 버려”라고 벌을 주면서도 내심 얼마 되지 않는 돈이라서 포기했다.

“그럴게, 엄마. 근데 시장에 다시 가보면 안 될까?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딸의 말에 다시 남대문시장에 갔을 때 가게들이 막 문을 닫고 있었다.

“너, 펜 들어 있는 봉투 놓고 갔지?”

속옷가게에 들어서자 주인은 반가워했다. “요즘 아이들은 그런 정도의 물건은 포기하는데 너는 꼭 찾으러 올 것 같아 문을 닫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녀가 다정하여 인상적이었다는 말도 했다. 아이는 물건을 찾은 게 너무 기쁜 나머지 엄마에게 속삭였다.

“엄마, 그래도 쓰레기는 내가 버릴게.”

작은 사업을 하고 있는 분이 이 이야기를 듣더니 대뜸 제안했다.

“너, 대학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꼭 우리 회사에 입사해라.”

자기 딸이라면 똑같은 경우에, 잃어버렸다고 야단치면 입 먼저 내밀었을 것이고, 다음엔 문 꽝 닫고 제 방에 들어갔을 것이고, 살그머니 혼자 가봐서 혹시 찾았으면 엄마 앞에 탁 내려놓으며 의기양양했을 것이라는 것.

유학을 떠나기도 전에 취직자리부터 예약되었다며 농담을 했지만 나 역시 그런 조카딸이 참 사랑스럽다. 작은 선물에도 ‘고맙습니다’라며 밝게 웃으면서 나를 꼭 껴안고, ‘제가 할게요’라고 심부름을 자청하는 아이, 이런 인성을 가진 순둥이들이 적응할 수 있는, ‘착해도 되는 사회’라면 좋겠다.

윤세영 수필가
#한국 학교#성적#대학#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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