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정권따라 오락가락… ‘뒷북 심판’ 금융당국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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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26일 제재심의위… 210여명 징계수위 확정

“이명박 정부 때는 친(親)기업, 규제 완화가 대세여서 검사나 처벌을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했다. 그동안 손보지 못한 부실을 한꺼번에 도려내다 보니 징계가 많아진 측면이 있다.”(금융당국 관계자)

금융회사와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사상 최대 규모의 고강도 징계가 논의될 26일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를 앞두고 금융당국 안팎에서 뒷북대응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낙하산 인사가 만들어낸 관치금융 관행과 허술한 관리감독 시스템이 잇단 금융사고의 원인인데도 근본 처방을 내놓기보다 금융회사에만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지난 정권에서 힘 있는 ‘금융 4대 천왕’의 눈치를 살피며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렸고 이후에도 오락가락하는 ‘고무줄 징계’와 감독 정책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어왔다고 지적한다. 한국 금융산업이 선진화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이 예측 가능한 정책과 감독 방향을 제시하는 심판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 “눈치 보며 묵혀왔던 부실 한꺼번에 청산”

26일 제재심의위원회에서는 9개 금융회사 및 임직원 210여 명에 대한 최종 징계 수준이 결정된다. 전현직 최고경영자(CEO) 10여 명이 징계 대상에 포함됐으며 해임권고, 직무정지, 문책경고 등 중징계 대상자만 50명이 넘는다.

금감원이 1999년 설립된 이후 이처럼 한꺼번에 무더기 고강도 징계 카드를 꺼낸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와 비교해도 징계 규모와 강도에서 확연한 차이가 보인다. 금감원은 지난해 4대 금융그룹 계열 26개 금융사의 위법사항 160건에 대해 제재심의를 했지만 임직원 2명에게만 중징계를 내렸다. 회사에 대해서도 과태료 6억5520만 원과 12건의 경징계 조치만 내렸다. 한 금융회사 고위 임원은 “지난 정권의 실세였던 4대 천왕이 군림하던 시절 당국이 이들 눈치를 살피느라 중징계 사안도 솜방망이 처벌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이 지난 정부에서 제대로 된 감독이나 검사를 하지 못하다가 정권이 바뀌고 뒤늦게 ‘부실 청산’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국이 뒤늦게 전방위 검사를 벌이면서 적폐가 한꺼번에 수면 위로 드러났고 무더기 징계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KB국민은행의 도쿄지점 부당대출, 국민주택채권 위조·횡령은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이 재임한 2010년부터 지속됐다. 하나은행이 관련된 KT ENS의 대출사기, 우리은행의 CJ그룹 차명계좌 개설도 수년 전부터 진행됐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금감원이 사고 징후를 미리 눈치 채지 못했다는 점에서 사후약방문식 검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일관성 있는 검사·제재 필요”

원칙 없이 여론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당국의 태도 역시 시장의 불신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금융당국은 김종준 하나은행장이 하나캐피탈 사장 재임 당시 저축은행에 부실 투자한 것과 관련해 경징계를 통보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재검사에 착수해 올 4월 중징계를 확정한 바 있다. 이를 두고 김승유 하나금융 전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금감원이 한 사안을 두고 세 차례나 검사할 정도로 한가한 조직인가. 지금껏 이런 예를 본 적이 없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KB금융의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와 관련해 임영록 KB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 예고된 중징계 방침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잘못했는지 제재 이유를 분명히 대지 못하면 정치적 의도의 징계라는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윤창현 금융연구원장은 “내부 갈등을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KB금융에도 문제가 있지만 과연 이 사태가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어도 금융당국이 똑같은 처벌을 내렸을지 의문”이라며 “제대로 검사하기도 전에 사안이 알려지고 비판여론이 커지자 당국이 징계 수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금융 감독의 일관성이 있어야 감독기관의 권위가 서고 제재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제재와 검사 권한을 둘러싼 금융위원회와 금감원 간의 역할도 명확하게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윤 교수는 “어떨 때는 잘못해도 가만히 있고, 어떨 때는 당국이 간섭할 일이 아닌데도 끼어들고 온도 차이가 심하다”며 “금융 정책과 감독 방향에 대한 일관성이 있어야 금융사도 불확실성 없이 장기적인 경영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금감원#금융당국#kb전산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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