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집시’ 쿠르드족, 독립 추진 선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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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자니 자치정부 대통령 “이라크는 분열… 독립투표로 결정”
케리 “중앙정부 도와달라” 설득

‘중동의 집시’ ‘나라를 갖지 못한 세계 최대 민족’ 등으로 불리는 이라크 내 쿠르드족(최대 700만 명 추정)이 이라크로부터 독립해 새로운 국가를 세울 뜻을 공식화했다.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의 마수드 바르자니 대통령은 23일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라크는 명백히 분열되고 있다”면서 “주민투표를 통해 이라크 중앙정부로부터 독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바르자니 대통령은 “우리는 2주 전 이라크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라크에 살고 있다. 쿠르드인들은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며 “주민들이 투표에서 독립국가 건설을 반대하더라도 그 뜻을 따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급진 이슬람 수니파 반군인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정부군을 물리치며 세력을 확장하는 현재의 혼란상을 최대한 이용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현 상황을 “중앙정부가 모든 것에 통제권을 잃은 것이 명백하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서방의 주요 언론들은 “이라크 사태의 최대 수혜자는 쿠르드족”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2005년 자치정부를 수립한 이라크 내 쿠르드족이 최근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된 상황을 이용해 독립까지 넘보고 있기 때문이다. KRG는 정부군과 반군이 교전하는 사이 대표적 유전지대인 키르쿠크를 장악했다. 쿠르드족이 독립 추진 과정에서 안정적 재원 조달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도시다. 또 인근 지역도 손에 넣으면서 기존보다 40% 늘어난 지역을 관할하게 됐다.

쿠르드족은 4000여 년 전부터 이란-이라크-터키-시리아 등 4개국 접경지역인 ‘쿠르디스탄’에 자리 잡았다. 전체 인구는 최대 4000만 명으로 추정되지만 독립 국가를 건설하지 못하고 각 나라의 소수민족으로 전락해 온갖 박해를 받아왔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이란과의 전쟁 당시 쿠르드족이 첩자 노릇을 했다며 인종청소를 단행해 최소 10만 명을 학살했다. 이 때문에 독립국가 건설은 쿠르드족의 최대 염원이다.

한편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24일 KRG의 수도 아르빌을 예고 없이 방문해 바르자니 대통령 등과 면담했다. 케리 장관은 이 자리에서 “쿠르드족이 이라크 안정 회복을 위해 협력한다면 중앙정부로부터 더 많은 권한을 양도받을 수 있다”고 협조를 요청했다. 지금은 독립을 추진하기보다는 ISIL과의 내전에서 이라크 중앙정부가 승리할 수 있도록 군사력을 지원해 달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중동#집시#쿠르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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