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법률드라마 ‘개과천선’…法피아 세계 치부 고발, ‘절반의 성공’으로 마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16부작으로 축소 종영 방침

김석주 변호사(왼쪽)가 증인을 매수해 재벌 2세 성폭행 피의자에게 유리한 허위진술을 끌어내는 장면. ‘개과천선’은 “법조계, 재벌, 정치권의 추악한 일면을 개연성있게 꼬집었다”는 호평과 “디테일에서 현장 취재 부족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함께 받았다. MBC 제공
김석주 변호사(왼쪽)가 증인을 매수해 재벌 2세 성폭행 피의자에게 유리한 허위진술을 끌어내는 장면. ‘개과천선’은 “법조계, 재벌, 정치권의 추악한 일면을 개연성있게 꼬집었다”는 호평과 “디테일에서 현장 취재 부족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함께 받았다. MBC 제공
《 오 헨리 단편 ‘경찰관과 찬송가’의 주인공 노숙인은 감옥에서 겨울을 날 요량으로 가벼운 범죄를 시도한다. 무전취식과 성희롱을 저지르고도 체포되지 않은 그는 교회 앞에서 찬송가를 듣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리고 곧바로 거동 수상자로 체포돼 투옥된다. 종영을 2회 남긴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은 오 헨리의 픽션보다 비현실적이다. 대형 로펌 간판 변호사인 주인공 김석주는 부와 권력의 편에 서서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교묘하고 잔혹하게 몰아세워 입신한 속물. 사고로 기억을 잃은 뒤 ‘내가 정말 이렇게 지저분한 일을 했나’라는 회의에 빠져 차츰 정의의 변호사로 변신한다. 체포된 노숙인과 달리 그에게는 개심(改心)을 실천할 기회가 주어진다. 》

현실의 개심은 어렵다. 이제껏 살아온 기억이 방향 전환에 완강히 저항한다. 하지만 김석주는 편리하게도 기억을 잃었다. 법률적 지식, 경험으로 얻은 노하우는 손상되지 않았다. 강력한 병기가 기능을 유지한 채 적진으로 옮겨온 셈이다.

2006∼2008년 미국 CBS가 방영한 드라마 ‘샤크’도 진영 바꾼 변호사 이야기였다. 주인공 스타크는 재판에서 이기는 쪽이 정의라 믿고 살아온, 김석주보다 5배쯤 밉살스러운 변호사다. 그는 자기 덕에 풀려난 범죄자가 출소하자마자 아내를 살해하는 사건을 겪은 뒤 검사로 ‘이직’한다. 공들여 무죄로 풀려나게 했던 죄인들을 힘겹게 잡아들이면서 돈밖에 몰랐던 그의 마음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난다.

역지사지할 여건을 만들어주고 캐릭터의 변화를 꾀한 ‘샤크’와 비교하면 ‘개과천선’의 변신은 판타지에 가깝다. 억지스러운 초반부 설정을 그럭저럭 넘어가게 해준 건 김명민의 능청스러운 연기다. 맡은 역할의 삶을 늘 통째로 입어버리는 그는 구석구석 드러나는 이야기의 빈틈을 연기력과 카리스마로 메웠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로 상한가를 치고 있는 김상중이 로펌 대표 차영우 역을 맡아 시청자 설득을 도왔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이 드라마는 8∼9%대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얻었다. 그런데 애초 계획보다 4부 축소한 16부작으로 종영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뜻밖의 음모론이 번졌다. 재벌과 정치권의 지저분한 구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다 외압을 받은 게 아니냐는 것.

‘개과천선’이 다룬 소송 소재는 모두 실제 사건을 연상시킨다. 초반부 김석주는 조선회사 편에 서서 연안 기름유출 사고로 피해를 본 어민들에게 “증거도 없으니 요구 보상금액의 5%에 합의하라”고 압박한다. 2007년 서해 태안반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유조선 기름 유출 사고에서 가져온 이야기다. 연예인 스폰서 성폭행 사건, 대기업과 금융 자회사가 개인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사건,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위험한 투자상품을 판매해 벌어진 소송이 차례로 소개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로펌 변호사는 “후반부 중소기업 소송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수많은 기업을 도산시킨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 사태를 다룬 것”이라며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달랑 한 장짜리 ‘심리불속행’(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것) 통지로 허무하게 종결된 기억이 되살아나 마음이 씁쓸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 로펌 대표가 검찰과 법원 인사를 좌지우지 하는 장면은 과도한 상상이지만 금융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에 로비를 펼쳐 재판을 유리하게 진행하는 장면은 개연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기업과 금융 관련 사건은 전문위원회에서 받은 자료를 토대로 검찰 수사가 진행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제작진은 외압설을 부인했다. ‘개과천선’ 이상호 책임프로듀서는 “대형 로펌을 중심으로 얽힌 사회의 치부를 건드리고자 만든 드라마이기에 ‘불편해하는 세력’이 시비를 걸어줘 화제가 되길 바랐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 현직 검사는 “법조계 이야기라 관심 있게 지켜봤는데 수사 절차 등 디테일이 현실과 동떨어져 몰입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개과천선#관피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