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섹시한 노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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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볼디니, 콜린 캠벨 부인, 1897년
조반니 볼디니, 콜린 캠벨 부인, 1897년
위험한 미녀.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 조반니 볼디니의 초상화 속 여인을 이렇게 부를 수도 있으리라. 차갑고 도도한 이 미녀는 19세기 말 영국 상류사회에 이혼 스캔들을 일으켰던 콜린 캠벨 부인이다.

그녀는 보수적이고 엄격한 영국 사회가 요구하는 착하고 순종적인 여성상이 아니었다. 간통 혐의로 아내를 고소한 남편을 맞고소할 정도로 도덕과 관습에서 자유로운 여성이었다.

가부장적인 영국 사회는 가족과 사회에 대한 의무를 저버린 콜린 캠벨 부인을 가혹하게 응징했다. 사교계에서 추방당하는 치욕을 겪게 한 것. 그러나 그녀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것을 계기로 인생 제2막을 열게 된다. 책의 저자, 예술잡지의 평론가로 활동하는 등 신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간 것이다.

유럽 최고의 초상화가로 명성을 떨쳤던 볼디니는 사회의 위선과 인습에 도전한 캠벨 부인의 미모와 개성을 재현하기 위해 치밀하게 화면을 연출했다. 차갑고 위험하며 섹시한 블랙 패션을 선택해 모델의 흰 피부를 강조했고 신속한 붓질로 큰 키와 늘씬한 여체의 곡선을 드러냈다.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으로 평가받는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에서는 부부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간다.

“저런 기가 막히는군, 노라, 당신이 거룩한 의무를 저버릴 수 있다니.”
“나의 거룩한 의무가 뭔데요?”
“그걸 내가 굳이 말해야 아나?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책임이지 뭐야!”
“내게는 그만큼이나 거룩한 또 다른 의무가 있어요.”
“그런 건 없어. 대체 무슨 의무인데?”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책임이에요.”


캠벨 부인의 초상화는 사회적 관습에 순응하는 여성시대는 가고 자신의 권리와 독립을 추구하는 섹시한 노라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 협회장
#조반니 볼디니#콜린 캠벨 부인#신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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