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서정보]‘으리’의 전교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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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보 사회부 차장
서정보 사회부 차장
10여 년간 ‘의리’를 모토로 내세우며 활동해왔던 배우 김보성 씨가 최근 ‘의리’ 신드롬을 일으키며 상한가를 치고 있다. 그가 ‘으리(의리)’를 부르짖으며 광고한 음료의 판매량이 60% 늘었다고 하고, 6·4지방선거에선 그의 ‘의리’를 차용한 선거포스터들이 잇따라 등장하기도 했다. 아무도 믿기 힘든 요즘 세태에서 한결같이 곁을 지킨다는 의리의 가치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요즘 김보성 씨 못지않게 수년째 의리를 지키는 집단이 눈에 띈다. 바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다.

19일 서울행정법원은 고용노동부가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가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해직 교원을 조합원으로 둘 수 있다는 전교조의 규약이 교원노조법에 어긋나니 시정하라는 정부의 명령을 어긴 결과다.

전교조 조합원 중 해고 교원은 9명. 6만 명의 조합원이 9명을 조합 밖으로 내칠 수 없다며 ‘의리를 지킨 대가’로 전교조는 노조의 법적 지위를 잃게 된 셈이다.

이 판결이 나오자 전교조는 조퇴투쟁, 시국선언 등 총력투쟁을 벌이겠다고 나섰다. 해고 교원 9명의 문제가 학생들의 수업권에 지장을 줄 만큼 중대한 것인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법적으로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9명의 조합원 자격 때문에 6만 명 조합원 조직에 사형선고를 내린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 전교조 옹호 측의 논리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9명의 조합원 자격 때문에 6만 명 조합원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지도록 방치한 전교조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된 전교조 규약은 제5조 해고조합원의 조합원 자격에 관한 것으로 ‘부당 해고된 교원은 조합원이 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들 9명은 부당 해고된 교원이 아니다. 이 중에는 국가보안법의 이적표현물 제작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경우도 있다. 통일교육을 명목으로 북한 역사교과서 등을 베끼다시피 인용해 자료집을 만들어 배포한 것이다. 법원은 “통일학교 교재가 순수한 학문적 접근이라고 주장하지만 북한의 선군정치를 미화하거나 찬양하는 등 이적 표현물에 해당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 교원은 유죄 판결로 해직되자 해직무효 소송을 냈으나 역시 패소했다. 9명 중 6명은 2008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 주경복 후보를 위한 기부금을 모집했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외노조와 관련해서도 전교조는 한 차례 법적 판단을 받았다. 2010년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이 위법하다는 소송을 냈다가 대법원까지 가서 패소했다.

전교조가 해고 교원 9명을 감싸고도는 것은 그들을 노조 안에 남겨두는 것이 원칙이자 꼭 지켜야 하는 가치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9명이 대표하는 가치는 9명을 처벌한 모든 법과 법외노조를 규정한 법 등이 모두 탄압의 도구 내지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 악법이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교원노조법 2조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민주주의 원리에 어긋나거나 노조 활동을 제약하는 반사회적 조항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결국 그들이 내부에서 지켜야 하는 가치가 외부의 상식이나 법에 반할 때는 그들만의 의리가 될 뿐이다.

전교조가 9명을 내치라는 건 아니다. 6만 명의 조합원과 연간 백수십억 원의 조합비를 걷는 전교조가 그들을 조합원으로 두지 않아도 의리를 지킬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다만 그들의 의리 때문에 교육계를 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하지 말길 바란다. 만약 법이 잘못됐다면 헌법소원도 내고 국회에 개정 청원도 하면 되지 않은가.

서정보 사회부 차장 suhchoi@donga.com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법외노조#교원노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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