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속보 보고 설마하던중 전화벨 소리, 제발 살아 있길 빌며 수화기 들었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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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난사 희생 GOP 병사 유족들 망연자실
“수류탄에 양 발목 다친 아들… ‘도망가라’ 소리치다 총맞아”

21일 오후 진우찬 상병(21)의 집에선 아버지 진유호 씨(50)가 뉴스에서 나오는 ‘동부전선 GOP서 총기 사고’ 속보를 보고 있었다. 뉴스 화면 속 지도에선 강원 고성군이 계속 나왔다. ‘설마,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던 중 오후 11시 10분경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기 싫었어요. (만약 아들 소식이 맞더라도) 총 몇 발 맞아도 좋으니 살아만 있어 달라고 빌면서 수화기를 들었어요.” 사단 인사참모라고 자신을 밝힌 이는 “진우찬 상병이 사망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몇 번을 되물어도 돌아오는 답은 “사망이 확인됐다”였다.

“욕 한 번 안 하던 아들이었어요. 군에 가기 전 ‘너 군에서 이러면 무시당한다. 욕도 하고 화나는 표정도 지으라’고 했는데도 안 한다고 했어요.” 힘든 군 생활 속에서도 늘 “아유, 괜찮아요”라고 말하던 진 상병은 GOP에서 근무하면서 멧돼지와 제비 등을 관찰하며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네가 최전방을 지키고 있어 발 뻗고 잔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들이 전방에 있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들이 집에 돌아올 2015년 1월 15일 제대일과 다음 주(30일) 휴가만 손꼽아 기다렸다.

진 상병을 포함해 스무 살에서 스물세 살, 아직 어리고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 12명이 사고가 난 21일 한순간에 세상을 뜨거나 부상을 입었다. 총기를 난사한 임모 병장이 자살을 시도하며 23일 총성은 멎었지만 사망한 다섯 병사의 삶은 돌이킬 수 없었다. 이들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서 만난 유가족들은 “앞으론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울먹였다.

강원도 최북단에서 혹독한 근무를 견디면서도 병사들은 우애가 좋았다고 했다. 김영훈 하사(23)의 양아버지 권선언 씨(50)는 “1년 전쯤 휴가 나올 땐 (숨진) 이범한 상병(20)도 함께 데리고 와 속초에서 맛있는 걸 사줬다”고 회상했다. 김경호 일병(21)의 아버지 김철만 씨(59)는 “경호가 병영생활관에서 쉬다 비명을 듣고 나가 다리를 절뚝이는 부상병을 부축해 올라오다가 총을 맞았다”며 참담해했다. 최대한 일병(20)의 아버지 최철현 씨(53)도 “아들이 임 병장이 던진 수류탄에 맞아 양 발목을 다쳤고, 이후 동기들에게 도망가라고 소리 지르다 총에 맞았다”고 부상병 가족에게 들은 얘기를 전했다.

임 병장에 대해선 유가족들의 말이 엇갈렸다. 진 상병의 아버지는 “근무 현장이 열악했다. 관심사병 B급도 A급이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지만 이 상병의 아버지 이종길 씨(49)는 “누나에게 휴가 때 ‘부대 내 문제 있는 병장이 있어 힘들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상병이 생전 언급한 병장이 임 병장인지에 대해선 확신하지 못했다.

숨진 병사들의 장례는 5일장으로 27일 발인할 예정이다.

성남=주애진 jaj@donga.com·최혜령 기자
#총기난사#GOP#임 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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