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창의력 교육의 오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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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해리포터’의 저자 조앤 롤링은 1990년 시골 역의 기차 안에서 ‘해리포터’의 착상을 얻는다. 열차가 고장을 일으켜 4시간 동안 하릴없이 멈춰 있는 동안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다. 그는 미혼모에서 1조 원의 재산가로 변신했다. 시인 조병화는 “높은 하늘에 현실의 예민한 안테나를 세워놓으면 번개처럼 시상(詩想)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예술가 기업인은 물론이고 정치인까지도 ‘번득이는 아이디어’, 즉 창의력에 목말라하는 시대다. 현대 사회에서 창의력은 바로 돈과 명예로 이어진다.

▷예술가들은 “작품 아이디어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듯 온다”고 말한다. 오래 생각만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롤링은 열차 출발을 기다리는 지루한 순간에 ‘해리포터’를 만들어 냈다. 이처럼 창의력은 쉬거나 머리를 비우고 난 뒤 반짝이는 경우가 많다.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은 이에 대해 과학적 분석을 시도한 바 있다.

▷융은 인간의 무의식에 주목했다. 그는 “의식과 대비되는 무의식은 개인의 경험이 축적된 창고”라고 정의했다. 무의식은 평소에는 의식의 방해로 인해 가려져 있지만 휴식을 통해 마음이 이완되고 편안한 상태가 되면 창의력의 원천이 된다는 주장이다. 어느 순간에 ‘문득’ 또는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의식이 힘을 발휘한 덕분이다. 융은 “무의식은 창의력의 샘물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우리 교육의 새로운 화두는 창의·인성 교육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위한 ‘행복 교육’을 내걸었고, 세월호 참사 이후 인성 교육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을 학습 부담에서 벗어나게 해준다고 창의력이 절로 생기는 건 아니다. 요즘 교육운동가들이 외면하는 것이 있다. 필요한 지식을 충분히 체득하고, 현실에 대한 고민과 사고(思考)를 거듭한 상태에서 정신을 쉬게 할 때 창의력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기본과 준비 없는 창의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겉멋에 사로잡힌 무모한 교육 실험으로 창의력은 물론이고 기본마저 내버리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해리포터#창의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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