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검증 자체가 문제”… 한일관계 복원 또 물건너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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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고노담화 검증결과 발표/정부 대책-시민단체 반응]
월례 국장급 위안부협의 차질… 美의 과거사 중재 노력도 흔들
정대협 “日정부 사과 받아낼것”… 태평양전쟁유족회 “한국인 모욕”

한일 국장급 협의를 통해 해결책을 찾을 것으로 기대됐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일본의 고노(河野) 담화 검증 결과 발표로 밑동이 흔들리게 됐다. 양국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 일본이 강제동원 책임을 인정했던 최초 문서를 검증하는 보고서를 발간했기 때문이다. 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는 일본이 식민 지배와 침략을 인정하고 사과한 무라야마(村山) 담화와 함께 한일관계의 기본 토대로 인식돼 왔다.

한국 정부가 20일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고 하면서 이를 검증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된 행위로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일”이라고 비판한 것은 이 같은 상황 인식에 토대를 두고 있다. 특히 양국 간에 주고받은 외교적 협의 내용을 왜곡해 공개하며 국내 정치적 용도로 사용한 일본의 태도에 한국 정부는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 “앞으로 한일 간에 정상적 외교 불가능할 것”


조세영 전 외교부 동북아국장은 “검증 보고서의 내용을 보면 일본이 그동안 밝혀온 것과 달리 전혀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는 자세가 아니다. 허탈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 외교 사안을 검증해 발표한다는 발상도 있을 수 없지만 발표 내용도 검증 보고서가 아니라 마치 국제적 홍보자료 같다”고 했다. 조 전 국장은 “앞으로 한일 간에 정상적인 외교가 가능할까 우려스럽다”고도 했다. 조 전 국장은 고노 담화 채택 당시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실무자로 근무했다.

○ 국제사회와 대일압박 공조강화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검증 보고서를 면밀히 분석해 반박 근거를 만드는 한편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일본군이 자국 군인들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위안부라는 반인륜 시설을 운영했다는 사실은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공분을 일으켜 왔다. 미국 정부는 공식 용어로 ‘성노예(sex slave)’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할 정도다.

4월 시작돼 월례행사로 이뤄지던 한일 위안부 국장급 협의는 이번 발표로 타격을 입게 됐다. 실제 4, 5월 두 번 열린 회의는 6월 중반이 넘어가도록 날짜를 잡지 못하고 있다. 6월을 건너뛰면 ‘월례(月例)회의’라는 원칙도 무너지게 된다.

한일 사이를 왕래하며 중재자를 자임해온 미국의 역할도 약효가 끝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은 조 바이든 부통령(지난해 12월)을 시작으로 존 케리 국무장관(올해 2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4월)이 잇달아 한국과 일본을 방문해 양국 관계 회복을 독려해왔다. 최정상급까지 나서 일본의 각성을 촉구해온 것. 하지만 오히려 일본은 고노 담화 검증 보고서 발간이라는 역사왜곡으로 이 같은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 정대협·참여연대 “고노 담화 폄하 의도” 비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검증 보고서 발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정대협 측은 “고노 담화 작성 경위를 검토한 것 자체가 불순한 의도이며 고노 담화를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폄하하려는 시도”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어 “일본군 위안부가 강제적으로 동원됐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국제적으로도 지지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검증과 상관없이 일본 정부 차원의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할머니들과 국민의 뜻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도 이번 검증 결과를 강하게 비판했다. 김남근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은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 조치”라며 “한국 정부가 일본에 강력히 항의하고 국제 공조를 통해 엄정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등의 단체들도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이며 한국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숭호 shcho@donga.com·이건혁 기자
#고노 담화#정대협#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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