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하이데거가 본 고흐… 메를로퐁티가 평가하는 세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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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철학의 눈이다/강우성 외 지음·서동욱 엮음/532쪽·3만 원·문학과지성사

현대철학자치고 ‘그림’과 ‘미술이론’에 대해 한마디씩 하지 않은 이를 찾기 어렵다. 대표적 인물이 바로 하이데거. 그는 시골 아낙네의 구두를 그린 반 고흐의 정물화를 본 뒤 ‘밭고랑을 천천히 걷는 강인함’과 ‘대지의 습기와 풍요함’ ‘들길의 고독’ 같은 정서적 차원에서만 체험되는 ‘도구’로서의 구두의 본질을 드러내려 했다.

현상학자 메를로퐁티는 ‘생트 빅투아르 산’의 모습을 변주해 여러 편을 화폭에 옮긴 세잔의 풍경화에서 예술의 본질을 포착하려 했다. 그는 세잔의 작품은 끊임없이 그 “심층부를 파면서, 사물들의 흥분되고 불가해한 발생”을 회복시키려 한다며, 세잔은 예술이 사유에 이를 수 있는 ‘표현’이나 ‘언어’라는 사실을 꿰뚫고 있었던 작가로 평한다.

이 책은 이들 외에도 들뢰즈, 라캉, 사르트르, 푸코, 데리다 등 현대철학자 13인과 그들이 다룬 미술가를 소개하고 철학자들이 주창했던 미술이론을 정리했다. 최고의 사유체험인 철학을 최고의 시각체험인 미술과 결합해 추상적 논제에 색을 입히려 했던 철학자의 작업을 최대한 상세히 소개하려 한 노력이 돋보인다. 레비나스의 ‘우상’, 사르트르의 ‘실존’, 리오타르의 ‘숭고’, 데리다의 ‘시뮬라크르’, 마리옹의 ‘아이콘’ 같은 개념이 어떻게 빚어졌는지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각 장의 도입부에 배치한 요약문과 해당 철학자가 다룬 미술작품의 도판은 읽는 이의 편의를 위한 배려다. 사실 500쪽이 넘는 두께에 논의의 깊이 때문에 책장이 쉽게 넘어가진 않는다. 미술작품 속에 숨어있는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좋아하는 화가를 다룬 장부터 읽는 방법을 권한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미술은 철학의 눈이다#하이데거#반 고흐#세잔#메를로퐁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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