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스케치]인디음악의 ‘자취방’ 붕가붕가레코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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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 없다고 죽나… 우리 목표는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인디 음악계의 알찬 붕우, 붕가붕가레코드의 임원진이 붕가붕가 본사에 모였다. 왼쪽부터 나잠수 수석 엔지니어, 고건혁 대표, 김기조
 수석 디자이너. “최근 초등학교 콩쿠르 입상자에게서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다”며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하는 나잠수를 
나머지 둘은 크게 비웃었지만 ‘뭐라도 재미있는 것을 해보자’ 정신은 하나같이 딴딴하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인디 음악계의 알찬 붕우, 붕가붕가레코드의 임원진이 붕가붕가 본사에 모였다. 왼쪽부터 나잠수 수석 엔지니어, 고건혁 대표, 김기조 수석 디자이너. “최근 초등학교 콩쿠르 입상자에게서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다”며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하는 나잠수를 나머지 둘은 크게 비웃었지만 ‘뭐라도 재미있는 것을 해보자’ 정신은 하나같이 딴딴하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붕. 가. 붕. 가.

모든 건 정확히 이 네 글자에서 출발했다. 출발 동기는 출발점만큼 정확하지 못했다. 애당초 ‘붕가붕가레코드(붕가붕가) 설립 10주년 기념 인터뷰’라는 기사 아이템을 발제하는 게 아니었다. 알아보니 올해가 설립 10주년이 아니라 정확히는 9주년이랍니다. 10주년인 2015년까지는 몇 개월 남았는데, 이를 어쩌죠. 이런 보고를 데스크는 흘려 넘기지 않았다. 야, 붕가붕가. 거, 이름만 들어도 웃겨. 그걸로 충분해. 어찌됐든 기사로 다뤄 보자.

살면서 붕가붕가란 단어를 회화 상황에서 사용해본 적이란 거의 없다. 기자로서 자질이 부족할지언정 ‘나랑 붕가붕가할래?’ 같은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은 최소한 아닌 것이다. 그런 사정은 아랑곳없이 서울 홍익대 인근 거리나 공연장, 술자리를 오가며 인사치레나 길지 않은 대화를 나눈 게 친분의 전부인 곰사장, 즉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를 찾아갔다.

붕괴는 아니다, 기꺼이.

“누추한 데 모셔 죄송하다”는 곰사장의 말은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붕가붕가레코드는 서울 마포구 연남로의 한 건물 지하에 도사리고 있었다. 도사린다는 표현이 맞았다. 불과 5m 앞에서 입구를 못 찾아 곰사장(고 대표의 애칭)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을 정도로 간판도 없이 겸손한 사무실이었다. 곰팡이 냄새를 풍기는 계단을 내려서자 80m² 정도 넓이의, 쾨쾨하고 멋대가리 없는 공간이 나왔다. 긴 책상 두 개에 탁자와 헌 소파가 있는 사무 공간, 드럼이며 앰프가 비좁게 들어선 연습 공간, 낡은 콘솔과 음향 장비가 너저분하게 놓인 녹음 공간을 구분하는 건 근사한 골조 대신 가정집 문지방 같은 거였다.

마포구 독막로에 있던 원래 사무실은 그래도 깔끔하니 괜찮았는데 거긴 지금 장기하와 얼굴들의 소속사 사무실이 됐다. 지난해 붕가붕가 최고의 스타이자 막말로 돈줄이었던 장기하와 얼굴들이 회사를 나간 것이다. 기업 상황은 취재거리로서 ‘9주년’이란 타이틀만큼이나 애매한 것이었다. 곰사장은 원래 터전을 내주고 순순히 물러났다고 했다. 9주년은 팍팍해 보였다. 그때 눈에 들어온 건 대표 자리(래야 중학생 아들 공부 책상 같은) 옆에 버릴 액자처럼 놓여 있는 붕가붕가레코드 로고 네온사인이었다. “이래 봬도 플러그를 꽂으면 불이 들어온다”며 곰사장은 애칭에 걸맞은 거구를 움직여 붕가붕가 네온에 불을 밝혔다.

가내 수공업, 기꺼이.

대한민국 21세기 인디음악사의 괴이쩍은 작품은 대개 이곳, 붕가붕가에서 나왔다. ‘싸구려 커피’ ‘달이 차오른다, 가자’(이상 장기하) ‘석봉아’(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같은 노래의 어처구니없음은 종래 인디음악의 독창성이나 중독성의 범위를 비웃는 수준이었다.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을 비튼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불쏘클), 커트 코베인을 패러디한 ‘눈뜨고코베인’을 비롯해 ‘브로콜리너마저’(현재 소속 아님), ‘씨 없는 수박 김대중’, ‘아마도 이자람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처럼 팀명부터 괴괴한 아티스트를 가장 많이 보유한 음반사도 붕가붕가다.

이들 중 다수는 괴이하기만 한 게 아니라 음악성도 상당하다. 화제성과 팬덤으로 주류 가요계까지 넘본 붕가붕가의 음반들은 한국 인디음악의 2기를 열어젖혔대도 과언이 아니다. 붕가붕가 신드롬은 크라잉넛과 ‘말달리자’가 대변하는 1990년대 중반 한국 인디음악 개화기로부터 꼭 10년쯤 지난 상황에서 나왔다.

근데 붕가붕가란 음반사 이름부터가 좀 그렇다. 얼핏 떠오르는 인디 음반사 이름만 늘어놔도 파스텔뮤직,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처럼 앙증맞거나 비트볼뮤직, 석기시대레코드처럼 우직하기라도 한 게 천진데 ‘붕가붕가’는 발음하는 순간부터 기분이 찝찝하다.

“항문성교, 똥침, 아프리카 원주민…. 붕가붕가의 다양한 어원과 의미를 인터넷으로 찾아봤어요. 근데 그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의 용례만큼 우리 정체성에 어울리는 건 없었어요.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가 봉제인형이나 사람 다리 따위에 비비적대며 스스로 성욕을 달래는 행위’라는 정의. 자위가 은밀한 곳에서 혼자 있을 때 이뤄지는 거라면, 붕가붕가는 공개적이죠. 자, 이 로고를 보세요.” 개가 어정쩡하게 기댄 테두리는 노래를 들어주는 이들을, 그 뒤로 찬연히 솟는 태양은 이 음반사의 포부를 상징한다고 했다. 기존 인디음악의 자위적 특성 대신 적당한 대중성도 가지고 타인과 즐기며 예술적 욕구를 꿋꿋이 잘 해결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붕우유신, 기어이.


로고는 곰사장 맞은편에 앉은 김기조(본명 김경준) 붕가붕가 수석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말이 ‘수석’이지, 붕가붕가에 디자이너는 김 씨 한 명뿐이다. 곰사장 옆에 배석한 ‘수석 엔지니어’ 나잠수도 붕가붕가에 한 명뿐인 엔지니어이자 프로듀서다.

붕가붕가의 처녀작은 관악청년포크협의회의 1집 ‘꽃무늬 일회용휴지/유통기한’(2005년)이다. ‘관악청년’에서 짐작되듯 붕가붕가는 음악 좋아하고 적당히 삐딱하며 게으른 서울대생들의 치기 어린 벤처로 출발했다. 곰사장은 서울대 심리학과 00학번이다. 그가 2학년 때 재미로 ‘붕가붕가중창단’을 구성해 학내 공연에 출연한 게 시원이 됐다. 당시 학내 밴드 대부분이 하듯 악기 연습에 매진해 메탈리카나 자우림 노래를 똑같이 따라하느니 재밌는 자작곡을 해보자는 게 당시 재학생이던 곰사장이나 깜악귀(현 눈뜨고코베인 리더)의 신념이었고, 서울대 내 밴드의 자작곡들을 모아 최초로 음반에 담기 시작한 게 레코드사 설립의 복선이 됐다.

앞서 말한 관악청년포크협의회에는 훗날 각각 걸출한 인디 밴드 브로콜리너마저, 9와 숫자들의 리더가 되는 윤덕원과 9(송재경)가 속해 있었다. 곰사장은 운이 좋은 편이다. 아니, 붕가붕가의 사훈인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위한 노력의 결과가 천재적 음악성으로 발현된 것인지도 몰랐다.

가나다라, 마바사.

수석 디자이너 김기조가 만든 붕가붕가레코드 로고(위)와 주요 음반들. ‘싸구려 커피’는 나잠수 디자인. 붕가붕가레코드 제공
수석 디자이너 김기조가 만든 붕가붕가레코드 로고(위)와 주요 음반들. ‘싸구려 커피’는 나잠수 디자인. 붕가붕가레코드 제공
인디 음악계의 애국가 비슷한 게 돼버린 ‘앵콜요청금지’(2007년)를 부른 브로콜리너마저를 떠나보낸 데 이어 지난해 오랜 친구인 장기하와 얼굴들과도 작별한 붕가붕가와 곰사장은 의외로 담담했다. 어차피 장기하나 브로콜리 신드롬은 뜻하지 않게 얻어걸린 벼락같은 행운이었고, 그들 없이 ‘딴따라질’을 어떻게 지속시키느냐는 그들이 함께일 때부터 이미 곰사장, 김기조, 나잠수가 고민해 왔던 바다. 앞서 언급한 그룹 외에 아침, 김간지×하헌진, 레스카, 생각의 여름, 코스모스 사운드까지 10개의 팀을 이끌고 붕가붕가는 백의종군 중이다. “끝난 잔치 뒤에는 장기하와 얼굴들이 열어준 문 하나가 있었다. …거기엔 ‘장기하와 얼굴들의 붕가붕가레코드’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으로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책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중·2009년·푸른숲)

행동보다 말이 더 앞섬을 자인하는 붕가붕가는 일찌감치 캐치프레이즈의 전람회장이었다. 학생 시절 이미 내놓은 ‘자취방 싸운드의 산실’ ‘수공업 소형음반’ ‘혼자 힘으로 사랑하자’부터 ‘뭐라도 재미있는 것을 해보자’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무조건 낫다’까지, 말이 사건을 만들고 사건이 사고를 쳐온 게 어차피 붕가붕가의 역사였다. 그렇다고 해도 장기하 같은 불세출을 배출할 행운이 또 올까.

붕가붕가 예비스타 1호는 그룹사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다. 압둘라 나잠(또는 나잠수·보컬, 댄스), J.J 핫산(또는 저질 핫산·댄스), 간 지하드(또는 김간지·드럼), 카림 사르르(베이스), 오마르 홍(기타)으로 구성된 이 코믹한 디스코 솔 댄스 밴드가 이달 25∼29일 열리는 전설적인 음악축제 영국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2014에 잠비나이, 최고은과 함께 한국 팀으로는 최초로 공식 초대됐다. 이들의 근작 ‘탱탱볼’을 들어보자. 글래스턴베리의 디렉터 말콤 헤인스까지 중독시킨 붕가붕가의 탱탱한 저력을 움켜볼 수 있다.

회사 설립 이후 처음으로 소속 아티스트가 총출동하는 전국 순회공연도 다음 달에 치를 예정이다. 공연 제목은 ‘전국투어레이블쇼-붕가붕가전국시대’다. 다음 달 5일 대구(락왕), 6일 대전(믹스페이스), 19일 전주(남부시장 청년몰 광장), 20일 부산(인터플레이)에서 열린다(www.bgbg.co.kr 참조).

곰사장의 든든한 붕우 김기조와 나잠수의 공력도 일취월장이다. 서울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김기조는 한 글자 한 글자를 그림처럼 창작하는 ‘레터링(lettering)’을 붕가붕가 음반에 적용한 것을 비롯해 독창적인 시각연출로 인디 음악계를 넘어 캐논 카메라 같은 글로벌기업의 러브콜도 받고 있다. 김기조는 “여전히 주류 산업에서 풀 수 없는 미적 욕구를 해소하고 실험하는 통로로서, 제한된 시간과 예산 속에서 붕가붕가는 내게 하나의 퍼즐게임이 된다”고 했다.

서울대 공업디자인과를 나온 나잠수는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리더로서 영국에 진출하는 한편 수석 엔지니어 겸 프로듀서로서 음향 연출력이 높은 궤도에 올랐다. 이젠 타사 소속이 된 장기하와 얼굴들의 3집 사운드 역시 나잠수의 지휘 아래 완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나잠수는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참가는 꿈조차 꿔본 적이 없다. 그게 뭔지 잘 몰랐기 때문”이라면서도 “제 오랜 조탁의 결실로 본다. 술탄은 정통성과 팝의 수호자”라고 담담히 소감을 전했다.

음악성과 화제성을 갖춘 10개의 팀, 기업 구성원 90%가 A형인 소심한 몽상가라는 든든한 자산 외에 붕가붕가는 사업 아이템도 무궁무진하다. 발바닥이 장판에 눌어붙는 자취방에서 노닥거리고 키득거리며 키운 상상력이 그 엔진이다.

깡마른 음악인을 죄다 모아 남성미의 극단을 보여줄 헤비메탈 밴드 ‘미스터 코리아’는 20년 지난 문명의 이기를 첨단과학으로 오해하고 숭상하는 이들이다. 데뷔도 안 했지만 1집(‘디 인터넷’)과 2집(‘시디롬’) 제목부터 지어뒀다. 태양의 서커스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요소를 홍익대 인근 버스킹과 융합한 거대한 콘셉트의 밴드 ‘스핑크스와 북청사자들’도 데뷔가 임박했다. 둘 다 이름만 지어놨을 뿐 멤버도, 당연히 노래도 없다.

없으면 어떤가. ‘심지어 나쁘지도 않다’는 말만은 질색이라는 붕가붕가의 사훈은 여전히 우뚝하다. ‘뭐라도 재미있는 것을 해보자.’

코가 적응되니 쾨쾨한 사무실이 조금 쾌적하게 느껴졌다. 대화가 끊겨 조용해진 이 휑한 공간에 문득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든 직원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네, 붕가붕가레코듭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붕가붕가레코드#장기하#인디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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